권무군관(勸武軍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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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양반 사족의 자제들에게 벼슬을 주기 위해 3군영에 설치한 군관직.

개설

권무군관(勸武軍官)은 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훈련도감(訓鍊都監)의 3군영에 설치된 군관직(軍官職)을 말한다. 조선후기에는 평민 및 천인 신분의 무과 급제자가 증가하는 등 무과 운영이 방만해지면서 양반 사족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권무청(勸武廳)을 설치하여 사족 자제를 중심으로 권무군관을 양성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

담당 직무

권무군관은 1706년(숙종 32) 금위영, 1710년 어영청, 1717년 훈련도감에 각각 50명씩 총 150명의 인원을 두었는데, 특히 지위와 문벌이 좋은 양반 집안의 자제들로 충원하였다. 이들 3군영에 권무군관 직임을 설치한 이유는 양반 사족 자제에게 무예를 권장하고 관직을 수여하는 것이었으므로, 실제 군사적 의미는 없었다.

이들은 권무과(勸武科)라는 특별 시험을 통해 벼슬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는데(『현종실록』 3년 7월 13일), 권무과에는 왕이 친히 참가하여 시험을 보는 친림시취(親臨試取)와 시험관을 임명하여 시험을 치르는 명관시취(命官試取)의 방식이 있었다. 친림시취일 때는 각 군문의 도제조(都提調)와 천총(千摠)·파총(把摠)·무종사관(武從事官) 등이 시험관으로 참여했으며, 명관시취일 때는 대신 1명, 2품 이상의 문·무관 각 1명, 당상(堂上)의 문·무관 각 1명, 당하(堂下)의 문·무관 각 1명이 시험관이 되었다.

시험 과목은 무예 11기(技) 중 왕에게 품신(稟申)하여 과목을 지정 받아 2기 또는 3기만을 시험 보았고, 시험 방법과 정원은 별시(別試)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합격자에게는 초시(初試)복시(覆試)를 거치지 않고 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숙종실록』 30년 4월 29일).

변천

권무군관은 1706년에 금위영에 처음 그 직임을 설치한 후, 1710년에는 어영청, 1717년에는 훈련도감에 각각 설치하면서 확대되었다. 그러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기존의 군제(軍制)를 전면 개편하면서 그 직임이 완전히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속대전(續大典)』
  • 육군사관학교 한국 군사 연구실 편, 『한국 군제사: 근세 조선 후기편』, 육군본부, 1977.
  • 장필기, 『조선 후기 무반 벌족 가문 연구』, 집문당, 2004.
  • 정해은, 「17세기 상천(常賤) 무과급제자에 대한 차별과 사족의 권무(勸武)」, 『조선시대사학보』42, 2007.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