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논(權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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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07년(선조40)∼1683년(숙종9) = 77세]. 조선 중기 효종~현종 때 활동한 문신. 이름은 권논(權碖) 혹은 권론(權碖). 자는 사확(士確)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권엽(權曗)의 아들이고, 영의정남구만(南九萬)의 외삼촌이다. 어머니 나주정씨(羅州丁氏)는 정호경(丁好敬)의 딸이고, 아내 풍천임씨(豊川任氏)는 임희지(任羲之)의 딸이다.

효종~현종 시대 활동

24세이던 1630년(인조8) 식년(式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20여 년 넘게 대과에 급제하지 못하였다. 1651년(효종2) 임금이 참석한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의 강경시(講經試)에서 수석을 차지한 까닭에 회시(會試)에 나가게 되어 45세 때 식년(式年)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효종 시대 내직으로 사헌부 감찰, 공조 · 형조 · 예조 · 병조의 좌랑(佐郞)을 거쳐서, 호조 · 형조의 정랑(正郞)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가 되었고, 1657년(효종8) 예안현감(禮安縣監)을 거쳐 함양군수(咸陽郡守) · 순천군수(順天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함양군수로 있을 때 해마다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백성들이 많았는데, 그 대책을 미리 세워서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1672년(현종13) 장연부사(長淵府使)로 재임할 때 소금 싣는 배의 사공 13명이 익사한 사건을 은폐하려다가 발각되어 파직당한 다음 귀향(歸鄕)하였다. 충청도 충주(忠州) 서암(捿岩)에서 10여 년 동안 은거하다가, 1683년(숙종9) 8월에 77세의 나이로 돌아갔다.

사후 추모와 유족

묘소는 충청도 충주(忠州) 검단리(檢丹里) 선산(先山)에 있는데, 조카 남구만(南九萬)이 지은 묘갈명(墓碣銘)이 남아있다.

관력, 행적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송자대전(宋子大全)』
  • 『창주유고(滄洲遺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