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강(具義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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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59년(명종 14)∼1612년(광해군 4) = 54세.] 조선 중기 선조~광해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이다. 자(字)는 자화(子和)이고, 호(號)는 해문(海門)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구응상(具應祥)이다.

선조 시대 활동

1585년(선조 18) 사마시(司馬試)에서 생원(生員)으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27세였다.[<사마방목>]

1596년(선조 29) 정시(庭試) 문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38세였다.[<문과방목>]

1598년(선조 31) 사헌부 지평(持平)이 되었고, 이듬해 사간원 정언(正言)을 거쳐 헌납(獻納)이 되었다.

1600년(선조 33) 이조 좌랑(佐郞)으로서 강원도 암행어사(暗行御史)로 파견되었으며, 1601년(선조 34) 성균관 직강(直講)을 거쳐서, 1602년(선조 35) 홍문관 수찬(修撰)과 부교리(副校理)를 역임하였다.

1603년(선조 36) 홍문관 교리(校理)에서 사간원 사간(司諫)을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되었고, 이듬해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임명되었다.

1605년(선조 38) 의주부윤(義州府尹)이 되어 외방으로 나갔다가 돌아와 1607년(선조 40) 의금부 동지사(義禁府同知事)와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시대 활동

1608년(광해군 즉위) 호조 참판이 되었다.

1609년(광해군 1) 주청사(奏請使)의 부사(副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가자(加資)되었으며, 노비와 전결(田結)을 하사받았다.

1611년(광해군 3) 사간원 대사간(大司諫)과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간이집(簡易集)』
  • 『감수재집(感樹齋集)』
  • 『고대일록(孤臺日錄)』
  • 『모당집(慕堂集)』
  • 『석루유고(石樓遺稿)』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악록집(岳麓集)』
  • 『용주유고(龍洲遺稿)』
  • 『월사집(月沙集)』
  • 『응천일록(凝川日錄)』
  • 『인재집(訒齋集)』
  • 『임하필기(林下筆記)』
  • 『지봉유설(芝峯類說)』
  • 『취흘집(醉吃集)』
  • 『호주집(湖洲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