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료관(救療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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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의료 기관에 소속된 의원이나 왕실과 국가의 행사 등에 참여한 의원을 일컫는 말.

개설

조선의 의료 제도는 삼의사(三醫司)인 전의감(典醫監)·혜민국(惠民局)·제생원(濟生院)과 동서활인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의료 기관 외에도 의정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에도 의원을 배치했으며, 경성 5부와 성균관에도 월령의(月令醫)를 파견하였다. 또한 전옥서에는 옥의(獄醫), 삼군에는 군의(軍醫), 수군영에는 해도의원(海道醫員)을 두었고, 각 지방에는 심약(審藥), 의학교수(醫學敎授) 등을 파견하여 병자들을 구원하도록 했다. 구료관(救療官)은 중앙의 의료 기관에 소속된 자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구료관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증가하였다. 왕의 행행, 사신의 왕래, 국가기관의 행사 등에는 구료관을 배치하였는데, 혹시 발생할 수 있는 환자를 치료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왕의 행차, 과거 시험, 군사훈련이나 죄인을 문초할 때에는 늘 구료관을 참여시키는 것을 거론하였다. 예컨대 왕의 온행에 동원되는 시위군의 건강을 위해 전의감과 혜민서에서 의관 1명씩을 선발해서 구료관으로 파견했다.

내용 및 특징

구료관은 일반인을 대상으로는 잘 활동하지 않았다. 1645년(인조 23)의 서활인서에는 고지기 1명과 구료무녀(救療巫女) 2명만 있고, 구료 관원 및 서원(書員)은 입직하지 않았다. 동활인서에는 구료무녀 1명만 있고, 구료 관원 및 서원·고지기는 없었다. 동서활인서가 도성 밖에 위치한 것 자체가 의료 기관의 의무를 감당하기보다는 환자의 고립과 차단을 우선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은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1718년(숙종 44)에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크게 돌았는데, 활인서에서는 뇌물만 요구하고 구료하지 않아 환자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도성인들은 혜민서를 죽는 곳으로 여겨 가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혜민서의 구료관은 약값만 받고 약을 주지 않아 전염병이 창궐했는데도 의료 활동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숙종실록』 44년 11월 12일).

구료관의 문제는 정부 각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1686년(숙종 12) 4월의 과거 시험장에서 수많은 응시자가 압사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구료관이 제때에 배치되지 않아 10여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정부 내 옥사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있었다. 1722년(경종 2) 목호룡(睦虎龍)의 옥사에서 구료관이 문초 중인 죄인들이 죽는 것을 방지하지 못해 처벌을 받았다(『경종실록』 2년 4월 17일). 죄인이 독을 마시고 죽는 경우를 막지 못해 처벌을 받기도 하였고(『경종실록』 3년 4월 28일), 목호룡이 궁궐에 도착했을 때 죽어있어서 구료관이 엄한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영조실록』 즉위년 12월 8일). 물론 구료관이 손을 쓸 틈이 없이 죽은 경우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죄인에게 병이 있거나 고문을 받아 위중한지의 여부를 평소에 관찰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예컨대 국문 중인 죄인이 기절을 하면 구료관이 살펴본 후 다시 공초를 받게 했다(『정조실록』 16년 윤4월 14일).

반면 정조대는 도성 내에서 홍역에 대처하기 위해 구료관의 적극적인 의료 활동을 장려하기도 했다. 1786년(정조 10)에 전의감은 서부·북부·중부의 큰길 서쪽을 주관하고, 혜민서는 동부·남부·중부의 큰길 동쪽을 담당하게 했다. 전의감과 혜민서는 홍역을 치료하는 의술에 정통한 사람을 3명씩 뽑아 밤낮으로 근무하게 했다. 이들이 왕진할 때는 청파역(靑坡驛)과 노원역(蘆原驛)의 역마를 이용할 수 있었다. 특히 한성부에서는 구료관에 의한 의료 혜택을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언문과 한문으로 등사해서 알렸다.

변천

1897년(광무 1)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전까지 존재했으며 이후 사라졌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김두종, 『한국의학사』, 탐구당, 1966.
  • 변정환, 「조선시대의 역병에 관련된 질병관과 구료시책」, 『한국과학사학회지』 7(1) , 1985.
  • 이왕무, 「조선시대 국왕의 溫幸 연구」, 『국사관논총』 108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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