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채(官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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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민간인이 관아에서 대출받은 빚.

내용

조선시대에 기근이 들면 굶주린 백성들은 관아에서 빌려주는 진휼곡에 의존하였고, 상인들도 관아의 돈을 대출받아 상업자본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해외로 파견 가는 사신을 수행하는 역관들도 관아 돈을 대출받았다가 돌아와 상환하였다. 시장경제와 공공 금융 조직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나 곡물이 급히 필요한 사람들은 민간 사채 외에 관아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이를 관채(官債) 또는 공채(公債)라고 하였다.

그런데 빌려간 것을 납기일 안에 갚지 않아 관아 재정을 어렵게 한 경우가 자주 발생하였다. 특히 조선후기에 들어서 그 경향이 잦아지자, 정부에서는 그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와 관련하여 1679년(숙종 5)에 관채가 600냥 이상이면 양인, 공사천, 상인, 납속 당상·가선은 그 처자를 대출한 관아의 노비로 삼고, 잡직 당상·가선은 당사자는 유배에 처하고 처자를 노비로 삼는데, 당사자나 자손이 전액 납부하면 본래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러한 식으로 400냥 이상, 100냥 이상으로 등급을 나누어 추징 절차를 만들었다.

용례

特進官高荊山曰 臣曾爲南北道節度使 觀其農事 不唯有水旱之災 民困役重 不暇力農 連年凶荒 所受官債 未能償納 各鎭軍需 因此不敷 (『중종실록』 1년 12월 13일)

참고문헌

  • 『추관지(秋官志)』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