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합(觀理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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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대조전 서쪽 행각에 위치한 방을 일컫는 말.

내용

관리합(觀理閤)은 『영조실록』의 1757년(영조 33) 기사에만 두 차례 등장하는 건물명이다. 모두 중궁전 서씨(徐氏)가 관리합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이다(『영조실록』 33년 2월 15일). 중궁전 서씨는 영조의 원비인 정성왕후(貞聖王后)를 가리킨다. 『조선왕조실록』 이외의 사료에서도 관리합은 정성왕후가 사망한 장소로 기록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관리합의 위치에 대해서는 당시 세자였던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문집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 6권 「추감록소지(追感錄小識)」에 기록되었다. 정성왕후께서 관리합에서 승하하셨는데 관리합은 대조전(大造殿)의 서익각(西翼閣)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대한제국 말엽에 기록한 『궁궐지(宮闕誌)』에는 이와 다른 내용이 기록되었다. 대조전의 동익각(東翼閣)은 8칸의 흥복헌(興福軒)이며 서익각은 6칸의 융경헌(隆慶軒)이라고 했다. 또한 대조전의 서행각은 10칸으로 구성됐는데 이 안에 관리합이 있고, 관리합 남쪽에 경극문(慶極門)이 있다는 내용이다. 즉 관리합은 대조전 서행각 북쪽 편에 위치한 방을 지칭한다.

『궁궐지』에는 관리합 대신에 관리각(觀理閣)이 기록되었다. “1757년(영조 30) 2월에 정성왕후서씨가 이곳에서 승하하셨다.”는 내용이 있어 한자 표기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관리각은 융경헌의 서남에 잇대어 있다고 기록되어 『궁궐지』와 같은 위치에 관리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궁궐지』에 실린 숙종이 지은 「관리각벽서하방소지(觀理閣壁書下方小識)」에 “내가 이미 관리(觀理)로 각의 이름을 짓고, 또 고훈(古訓)을 모아 벽에 써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언젠가 내가 노했을 적에 그 일을 잠시 중단하고 밤새도록 연구해 보았더니 마음이 자연히 가라앉았다. 실로 사색의 유익함을 깨달았다.”는 내용을 통해 관리합이라는 명칭을 숙종이 직접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조전 서행각에 위치한 관리합은 1833년(순조 33)에 발생한 화재로 창덕궁의 내전이 소실됐을 때 같이 사라졌다가 대조전과 함께 곧바로 재건되었다. 이후 1917년에 발생한 창덕궁 화재로 대조전과 함께 소실되었고, 이후 복구하지 못했다.

참고문헌

  • 『궁궐지(宮闕誌)』
  •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
  • 서울학연구소 역, 『궁궐지(宮闕志)』Ⅰ, 서울학연구소, 1994.
      1. 그림1_00017971_「동궐도」, 창덕궁 대조전 서행각 부분,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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