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순(郭鎭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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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06년(숙종 32)∼졸년미상.]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헌부 집의(執義)이다. 자(字)는 일보(一甫)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곽희적(郭熙績)이고, 어머니 이씨(李氏)는 이인식(李寅烒)의 딸이다.

영조 시대 활동

1744년(영조 20) 사학(四學)의 유생(儒生)으로서,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을 문묘(文廟)에 배향할 것을 영조에게 건의하였다.

1759년(영조 35) 식년(式年) 문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54세였다.[<문과방목>]

1761년(영조 37) 사간원 정언(正言)에 임명되었다.

1766년(영조 42) 사헌부 장령(掌令)이 되었다가, 1770년(영조 46) 사간원 헌납(獻納)을 거쳐서, 1773년(영조 49) 사간원 사간(司諫)으로 승진하였다.

1775년(영조 51) 사헌부 집의(執義)로 전임되었다. 이때 심상운(沈翔雲)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정후겸(鄭厚謙)·홍인한(洪麟漢) 등의 사주(使嗾)를 받고, 세손(世孫: 훗날의 정조(正祖))의 대리청정을 막으려는 글을 올렸는데, 대사간심욱지(沈勗之)와 집의곽진순이 그를 탄핵하지 않고, 이 논의를 정계(停啓)하였다고 하여 삭직(削職)되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영조]
  • 『일성록(日省錄)』[영조]
  • 『일성록(日省錄)』[정조]
  • 『국조방목(國朝榜目)』
  • 『가암유고(可庵遺稿)』
  • 『운석유고(雲石遺稿)』
  • 『입재집(立齋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