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현(固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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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기원하여 오늘날까지 현재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고성(固城)은 원래 소가야국(小伽倻國)의 영역으로, 신라가 고자군(古自郡)을 설치하였다. 고성이라는 명칭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사용하였는데, 당시 고성군은 영현(領縣) 3곳을 거느렸다. 고려시대에는 고성현(固城縣)으로서 거제현(巨濟縣)의 속현(屬縣)으로 있다가 현령관(縣令官)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별다른 변화 없이 고성현으로 계승되고 그대로 현령이 파견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내내 고성현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다가, 1895년(고종 32)에 고성군(固城郡)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성현은 원래 소가야국의 땅이었다. 신라가 고자군을 두었고, 경덕왕 때 고성군으로 개명하였다. 고성군은 신라 9주(九州) 중 강주(康州)에 소속되었으며, 문화량현(蚊火良縣)·사수현(泗水縣)·상선현(尙善縣) 3개의 영현을 거느렸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995년(고려 성종 14)에 고주자사가 되었으나, 1005년(고려 목종 8)에 폐지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거제현의 속현이 되었다가 이후에 현령을 두어 독립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별다른 변화 없이 고성현으로 계승되었다.

조직 및 역할

신라시대에 고성군에는 외관으로 태수(太守)가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고성현이 거제현의 속현이었다가 이후 현령관이 파견되면서 독립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중앙에서 고성에 현령관을 파견하였지만, 고성에는 현령관의 집무소와 별도로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성현에는 종5품의 현령(縣令)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고성에는 종5품의 문관 혹은 무관이 현령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30명, 인리(人吏) 30명, 지인(知印) 10명, 사령(使令) 15명, 관노(官奴) 25명, 관비(官婢) 21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5품의 현령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변천

조선시대에 고성현의 연혁은 거의 변동이 없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진주부(晉州府)에 속하여 고성군이 되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고성군은 경상남도 소속의 3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고성군으로서 별다른 변동 없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고성현의 관아가 위치했던 곳은 현재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성내리 일원이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