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리(高敬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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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60년(명종 15)∼1609년(광해군 1) = 50세.] 조선 중기 선조~광해군 때의 문신. 자(字)는 이척(而惕)이고, 호(號)는 창랑(滄浪)이다. 증직은 사헌부 지평(持平)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이고, 거주지는 광주(光州)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고계영(高季英)이고, 어머니 제주양씨(濟州梁氏)는 병절교위(秉節校尉)양응기(梁應箕)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선조 시대 활동

1591년(선조 24) 사마시(司馬試)에서 생원(生員)으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32세였다.[<사마방목>]

광해군 시대 활동

광해군 즉위 후 집권한 대북세력으로부터 선조를 호종(扈從)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곤경에 빠져 있던 정철(鄭澈)과 성혼(成渾)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상소에서 이언적(李彦迪)을 제외하였다는 이유로 대북세력에 의하여 상소는 불태워졌으며, 사림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종신금고에 처해지면서 관직에 진출할 수 없었다. 후에 사헌부 지평에 증직되었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광주(光州)의 하대곡(下大谷)에 있다. 1676년(숙종 2) 광주(光州)에 건립된 운암사(雲巖祠)에 제향되었다.

부인 충주박씨(忠州朴氏)는 감역(監役)박민고(朴敏古)의 딸인데, 슬하에 3남을 두었다. 장남은 고윤후(高允厚)이고, 차남은 고득후(高得厚)이며, 삼남은 고적후(高積厚)이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사마방목(司馬榜目)』
  • 『고대일록(孤臺日錄)』
  • 『광해조일기(光海朝日記)』
  • 『대동야승(大東野乘)』
  • 『만오집(晩悟集)』
  • 『매산집(梅山集)』
  • 『번암집(樊巖集)』
  • 『사계전서(沙溪全書)』
  • 『송자대전(宋子大全)』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은봉전서(隱峯全書)』
  • 『우계집(牛溪集)』
  • 『중산재집(重山齋集)』
  • 『창석집(蒼石集)』
  • 『청선고(淸選考)』
  • 『혼정편록(混定編錄)』
  • 『회병집(晦屛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