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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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방법으로 머리를 거두는 양식으로 자연 그대로 두거나, 묶거나, 상투머리처럼 틀어 올리거나, 땋는 등의 모든 양식을 포함함.

개설

수발 양식에는 존두사상(尊頭思想)이 담겨 있어 머리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곧 효라고 생각하였다. 수발 양식만 보아도 그 사람의 지위, 계급, 신분, 혼인의 유무 등이 구별되는 사회적 질서의 한 방법이었다.

『세종실록』 「오례의」 흉례에 소렴 시에는 “왕세자 및 대군 이하의 왕자는 삼끈으로 상투[髻]를 매고, 왕세자빈(王世子嬪)과 내명부(內命婦)·외명부(外命婦) 이하의 여관(女官)은 삼끈으로 복머리[髽]를 짠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때의 계는 남자와 여자의 묶음머리를 의미한다. 1453년(단종 1)에는 “부인들의 머리털은 뒤로 향하여 상투를 틀어서 마치 우리나라의 향리(鄕吏)의 상투와 같습니다.”라고 하여 여자의 올림머리도 ‘계’라고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세자 및 어린 사람의 머리 모양으로 동계와 쌍동계(雙童髻)가 있다. 쌍동계는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만든 것으로 나이가 어릴 때 한다. 원자(元子)의 머리 모양인 당계(唐髻)가 있는데, 어떠한 머리 형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중국풍의 머리 모양으로 생각된다.

여성들의 머리가 점점 높아지고 가체의 폐단이 심해지자 1749년(영조 25)에는 ‘계제(髻制)’라고 하여 머리를 땋아서 틀어 올려 쪽을 찌는 제도를 반포한다. 1759년(영조 35)에는 가체를 금하는 대신 족두리를 쓰게 하였다. 그러나 영조 당시에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1788년(정조 12)에 다시 가체 금령이 내려짐으로써 어여미 등의 머리가 없어지고 낭자머리, 쪽머리 등이 널리 수용되기에 이르렀다.

연원 및 변천

상투를 트는 풍습은 『사기(史記)』 열전(列傳)에 연나라 장수 위만(衛滿)이 조선에 들어갈 때 추결(椎結), 즉 상투를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머리 모양은 대체로 비슷하였던 것 같다. 삼한의 수발 양식에서 나타난 괴두노계(魁頭露紒)의 상투가 1895년(고종 32) 단발령 때까지 줄곧 행하여졌다. 고구려의 남자는 추계(椎髻)와 쌍계로 빗었고 여자는 환계(環髻)나 얹은머리, 묶어 늘인머리가 대표적이다. 백제에서는 머리카락을 땋아서 2줄은 미혼, 1줄은 기혼을 상징하였고, 신라의 여자는 반계(盤髻)와 북계(北髻)로 빗었고, 남자는 추계와 전발이 행하여졌다. 통일신라시대는 서역(西域)의 영향을 받은 당과의 교류로 의복과 어울리는 더욱 크고 화려한 머리와 화장법이 유향하였다. 고려시대는 오른쪽 어깨로 늘어진 타마계(墮馬髻)가 유행하였으며, 미혼 남녀는 머리를 묶었다는 기록이 있다. 충렬왕대의 개체변발(開剃辮髮)은 전체적으로 행하여진 것이 아니고, 다만 이때의 영향으로 고대보다 여자의 머리에 땋는 방법이 많이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계(高髻)의 성행으로 가체(加髢)에 대한 논의가 영·정조대에 여러 차례 있었으나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779년(정조 3)에는 큰머리장식인 떠구지가 생겨났으며, 순조대 중엽 이후에 쪽진머리가 보편화되었다. 1910년(융희 4) 이후에는 양복의 착용과 함께 단발이 일반화되었고, 1937년경부터 전기로 머리를 지지는 전발(電髮), 즉 퍼머넨트를 하게 되었다.

형태

『조선왕조실록』에는 ‘계(髻)’의 표현이 남녀의 구별 없이 사용되었다. 즉, 붕계(鬅髻)는 쪽진머리, 계주(髻珠)는 보석으로 장식한 머리, 추계(椎髻)는 상투머리, 가계(假髻)와 다리[髢髻]는 가채로 만든 머리, 즉 가발을 말한다. 고계(高髻)는 높이 올린 머리로 여자용은 가발 등으로 크게 만든 머리이고, 남자용은 높은 상투머리이다. 동계옥잠(童髻玉簪)은 나이 어린 사람의 머리에 옥비녀를 꽂아 장식한 것이고, 고계광수(高髻廣袖)는 높은 상투와 넓은 소매옷을 의미하며, 아계(丫髻)는 ‘아(丫)’ 자 모양으로 묶은머리를, 수계(首髻)는 중국풍의 부녀자의 머리를, 당계(唐髻)는 중국풍의 머리를 의미한다.

참고문헌

  • 김용문, 「아시아의 修髮樣式에 관한 硏究 : 東아시아를 中心으로」,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 박경자·김용문, 「우리나라 머리모양의 변천」, 『한국복식 2천년』, 국립민속박물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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