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음(禊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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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삼짇날 계곡에 가서 흐르는 물에 목욕하여 재액을 씻고 주연(酒宴)을 벌였던 행사.

개설

계(禊), 계제(禊祭) 혹은 수계(修禊)라 불리기도 한다. 9대 속절(俗節) 중의 하나이며, 일명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불리던 삼월 상사일(上巳日)에 행해졌다. 계음은 계곡 혹은 물가에 가서 1년간의 부정했던 기운과 액운을 떨쳐 버리기 위해 흐르는 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봄을 즐기는 세시 행사를 말한다. 또한 계음 의식은 연령대가 비슷한 동기 간에 함께 행하며 친목을 다지는 행사로도 인식되었다.

연원 및 변천

계음이 행해지는 상사(上巳)는 원래 음력 3월에 첫 번째 맞는 사일(巳日)을 이르는 것이었으나, 위(魏)나라 이후 삼월삼짇날을 이르게 되었다. 계음은 중국에서 3월 3일에 행하던 곡수연(谷水宴)에서 유래하였다. 곡수연은 계곡에 가서 잔치를 벌인다는 뜻으로, 물가에 술잔을 띄워 마시고 놀던 것을 이른다. 그 행사의 시작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계음 행사는 이미 신라 초기인 65년(신라 탈해왕 9)의 기록에도 보인다.

신라의 김알지 설화와 관련하여, 후한(後漢) 65년(후한 영평 8)에 가락국(駕洛國)의 장(長)들이 그 백성들과 함께 계음을 거행하다가 구지봉(龜旨峯)에 이상한 기운이 있는 것을 보고 가보니 그곳에 금빛 알[金色卵]이 있었다[『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김해도호부]는 내용에서 계음의 역사가 이미 삼국시대부터 행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시대에 이미 성행하였던 계음의 전통이 고려를 거쳐 조선에까지 전승되어 내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이 의식은 유연(劉淵)의 전조(前趙)에 의해 서진(西晉)이 함락되어 동진(東晉)이라는 이름으로 강남(江南)으로 수도를 이전하던 당시에도 거행되었다. 동진의 시대에 왕희지(王羲之)와 사안(謝安) 등을 비롯한 17인이 수계에 참여하였다(『명종실록』 17년 2월 25일)는 내용을 통해, 이미 그 시대에는 수계 즉 계음이 매년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세시 의례로 인식되어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계속 지내왔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관리들에게 주악을 내리며 이 행사를 장려한 이유는 수계의식이 공자(孔子) 문하생들의 유풍이라는 점과(『성종실록』 19년 3월 2일), 상서롭지 못한 재액(災厄)을 떨쳐 버리기 위해 물로써 정화하는 의미를 지닌다(『명종실록』 17년 2월 25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절차 및 내용

계음은 계곡이나 물가로 가서 그곳의 물로 정화하고 준비해 간 술과 음식을 먹고 시를 지으며 놀던 행사였다. 계음이 행해진 삼짇날은 5월 5일[重午], 7월 7일[七夕], 9월 9일[重陽]과 함께 음양오행 사상에 의해 양의 숫자가 반복되어 복운(復運)이 거듭되는 날로 길하게 여겨졌다. 이날은 목욕을 통해 심신을 정결하게 하는 수계의 날로 여겨, 국가에서도 이 행사에 동참하게 하였다. 이는 1488년(성종 19)에 상사의 수계가 공자 문하[孔門]의 유풍이라서 홍문관(弘文館)에 주악을 내리고 예문관(藝文館)도 함께 참여하게 하여 봄의 경치를 즐기게 하였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계음은 곡수연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날에는 물가에 술을 띄워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봄날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러한 의식을 통해 한 해의 재액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란 믿음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여성들 사이에서는 삼짇날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하여 반드시 이날은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이 또한 수계의 영향을 받아 생긴 풍속으로 보인다. 삼월삼짇날 무렵이면 봄기운이 왕성하고, 흥이 저절로 나 사람들은 산과 들로 몰려나가 화전과 수면을 만들어 먹으며 봄을 즐긴다. 이날 제물을 준비해 계곡에서 액운을 떨치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는데, 가능하면 몰래 제사를 지낼수록 그 효험이 있다는 속설이 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충청도 진천(鎭川)에서는 삼월삼짇날부터 초파일까지 우담(牛潭)의 동서 용왕당 및 삼신당으로 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고 한다. 이 또한 계곡에 가서 제사를 지내던 풍속에 기인한 민간 신앙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경도잡지(京都雜誌)』
  • 『금계집(錦溪集)』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동문선(東文選)』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무명자집(無名子集)』
  • 『통전(通典)』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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