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도(景陽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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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호남 지방의 광산·담양·화순·능성·동복·순창·옥과 등지에 설치된 역을 관할한 역도.

개설

경양도(景陽道)는 벽사도(碧沙道)·오수도(獒樹道) 등과 함께 조선시대 호남 지방에 편성된 역도(驛道)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전기 세종 연간에, 고려시대의 역도인 승라주도(昇羅州道)에 소속된 경양역(敬陽驛)·덕기역(德奇驛)·광리역(廣里驛)·인물역(人物驛)·가림역(嘉林驛)·오림역(烏林驛) 등과, 남원도(南原道)에 소속된 대부역(大富驛) 등을 개편·통합하면서 경양도를 설치하였다. 경양도에는 세종부터 성종대까지는 역승(驛丞)이 임명되었으나, 1535년(중종 30)부터는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역무를 관할하였다.

내용 및 특징

경양도는 조선전기 세종 연간에, 고려시대의 역도인 승라주도(昇羅州道)와 남원도(南原道)에 속한 역들을 통합·개편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승라주도에는 <표 1>의 30개 역이, 남원도에는 <표 2>의 12개 역이 소속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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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고려 때의 승라주도와 남원도는 조선시대에 역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벽사도·경양도·청암도(靑巖道) 등으로 분화되었다.

경양도의 속역에는 <표 3>과 같이 역리(驛吏) 1,332명, 역노(驛奴) 367명, 역비(驛婢) 216명, 역보(驛保) 659명, 솔정(率丁) 330명, 일수(日守) 70명 등이 배속되어 역무를 맡아보았다. 또 본역인 경양역에는 아사(衙舍)·외정청(外正廳)·내정청(內正廳)·인리청(人吏廳)·사령청(使令廳)·취반청(炊飯廳)·고마고(雇馬庫)·진휼고(賑恤庫)·창색청(倉色廳)·관노청(官奴廳)·객관(客館) 등의 역사(驛舍)가 건립되어 역의 실무에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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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경양역지』에 실린 각 역의 역마를 보면, 경양역에 20필, 덕기역에 4필, 가림역에 10필, 인물역에 10필, 검부역에 10필, 창신역에 7필, 대부역에 5필 등 총 66필이 배정되어 있었다.

변천

조선초기 경양도에는 경양역을 비롯해 덕기역(德基驛)·가림역(加林驛)·인물역(人物驛)·창신역(昌新驛)·검부역(黔富驛)·대부역(大富驛)·오림역(烏林驛)·광리역(廣里驛) 등 총 9개의 역이 소속되었는데, 『세종실록』「지리지」를 살펴보면 일부 역의 한자 표기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뒤 <표4>와 같이 오림역과 광리역이 청암도로 이속됨에 따라, 경양도는 나머지 7개의 속역으로 편제되어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경양도의 속역은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는데,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경양역지(景陽驛誌)』에도 이전과 똑같은 7개의 역이 경양도의 속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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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만기요람(萬機要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해동지도(海東地圖)』
  • 『조선후기지방지도(朝鮮後期地方地圖)』
  • 『동여도(東輿圖)』
  • 『경양역지(景陽驛誌)』
  • 조병로, 『한국근세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조병로, 「조선후기 호남지방의 역제운영에 관한 일고찰」, 『경기사론』2,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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