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청(警務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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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이후 대한제국기까지 행정 경찰 사무부터 사법 경찰 사무까지 포괄하여 담당한 경찰 최고 기관.

개설

1894년 7월 경무청 관제(官制)로 이전의 좌·우포도청이 폐지되고 경무청이 설치되어 내무아문에 소속되었다. 일반 행정 경찰 사무 이외에 사법, 순찰, 행형(行刑), 소송 사무까지 담당하였다. 이는 사회의 치안 질서 유지와 더불어 정권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였다. 1900년 6월에는 경부(警部)로 개편되어 강력한 경찰 기구로 확대되었으나 곧이어 폐지되었다. 1901년 경무청 관제가 일부 개정되었으며 이후 몇 차례 개정을 거쳐 1907년 7월 경시청으로 개편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갑오개혁 정부는 1894년 7월 14일 새로 경무청 관제와 그에 따른 업무 분담[職掌]을 공포하였다. 여기서 기존의 좌·우포도청을 폐지하고 서울에 경무청을 설립하여 내무아문에 예속시켰다. 경무청에는 경무사(警務使)·경무부관(警務副管)·경무관(警務官)·서기(書記) 등을 두어 한성 5서(署) 내의 모든 경찰 행정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같은 날짜로 공포된 「행정경찰장정(行政警察章程)」에 따르면 행정 경찰은 ① 백성들에게 방해되는 일을 방지하고 보호하는 일, ② 백성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일, ③ 방탕하고 음란한 짓을 금지하는 일, ④ 국법(國法)을 위반하려는 사람을 은밀히 수색·체포하는 일 등을 주된 업무로 맡았다. 「행정경찰장정」에서는 그 밖에 순검(巡檢) 직무와 위경죄(違警罪) 처리, 순검 선발 규정 등을 규정하였다.

당시 경무청의 수장인 경무사는 내무대신의 관할을 받아 한성부 내 경찰과 감금 사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대 사안인 경우 내무대신을 거치지 않고 직접 총리대신에게 보고하는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정2품으로 승격되어 각 아문 대신과 함께 군국기무처 회의원을 겸임하여 국정 개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경무청은 일반 행정 경찰 사무 이외에 사법 경찰·순찰·행형·소송 사무까지 포괄하는 강력한 기관으로 등장하였다.

갑오개혁을 추진했던 조선의 개혁 관료들은 내정 개혁을 위해 경찰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주한일본공사도 경찰 제도의 수립을 권유하였다. 결국 타케히사 카츠조[武久克造]일본공사관 부경시(附警視)가 경무청 고문관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조직 및 역할

1894년 9월 11일 군국기무처에서는 경무청에 갇혀 있는 범죄자들을 간혹 재판 없이 바로 처단하기도 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중죄에 대한 결안(結案)은 형조와 한성부의 공판을 거치기 전에는 할 수 없도록 하였다.

1895년 3월 25일 재판소 처무 규정 통칙을 반포하였다. 제9조에서는 검사에 결원이 있을 때에는 판사가 법부대신에게 통보하도록 하였다. 또한 새로운 검사가 임명되기까지 판사는 다른 판사 또는 경무관에게 임시로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같은 해 4월 29일 칙령 85호로 경무청 관제가 새로 공포되었다. 이 관제는 모두 22조로 되어 있다. 경무청에는 경무사 1명, 경무관 12명 이하, 주사 8명 이하, 감옥서장 1명, 총순 30명 이하, 감옥 서기 2명 이하, 간수장 2명 이하로 하였다. 경무사는 내부(內部) 대신(大臣)의 지휘·감독을 받아 전적으로 한성부 5부(部)의 경찰, 소방, 감옥에 관한 일을 총괄하였다. 경무청에는 경무사 관방(官房)과 총무국을 따로 두었으며, 궁내 경찰서 외에 한성부 5부 구역 안에 각 5개의 경무서(警務署)·감옥서를 두었다.

1900년 6월 9일 고종황제는 조칙을 내려 경부를 별도로 설치하고 경무청을 내부의 산하 경찰 조직이 아니라 별도 정부 부서로 개편하려고 하였다. 또한 경부 대신을 의정부의 찬정(贊政)으로 임명하여 의정부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경부의 관할 범위는 처음에는 한성부와 각 지방 개항장이었다. 그러다 같은 해 9월 21일 칙령으로 다시 경부 관제를 개정하여 한성부를 포함한 전국의 경찰 업무를 관장하는 것으로 확대하였다. 소관 업무도 국민 생활과 치안 유지라는 일반 경찰 행정 외에 특별히 국가 체제 안정을 위한 특별 업무, 황실범과 국사범·기타 범인에 대한 비밀 심문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경부에서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하자 1901년 3월 15일 경부를 폐지하였다. 1902년 2월 16일 칙령 3호로 경무청 관제는 크게 개편되었다. 황궁 내외 경비·수비뿐만 아니라 규찰(糾察), 죄인을 잡는 즙포(戢捕) 등과 더불어 국내 모든 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본래의 기능으로 돌아갔다.

변천

1905년 2월 26일 칙령 16호로 경무청 관제를 다시 개정하였다. 경무청은 내부에 속하여 한성 안의 경찰과 소방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면서, 한성 각 경무서와 감옥서를 관할하였다. 직원은 경무사 1명, 국장 1명, 경무관 12명 이하, 주사 8명 이하, 총순 34명 이하, 기수가 1명, 감옥서장 1명, 감옥서 주사 1명, 감옥서 간수장 2명, 감옥서 의사 2명 등이었다. 한성 안에 경무 5서와 감옥서를 나누어 두고 감옥서 안에는 감옥을 두되 남자와 여자 감옥을 따로 두었다. 이에 따라 1901년의 칙령 3호, 경무청 관제는 폐지되었다.

1906년 2월 12일 칙령 8호 경무청 관제 개정에서는 경무관 8명, 총순 24명 등으로 인원을 줄였다. 1907년 7월 27일 칙령 1호 경무청 관제를 개정하여 경무청을 경시청으로, 경무사를 경시총감으로 바꾸었다. 이때 경무청을 일본식 경찰 제도로 바꾸었다가 1910년 6월 30일 경시청 관제도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 『속음청사(續陰晴史)』
  • 『관보(官報)』
  • 『일본외교문서(日本外交文書)』
  • 국사편찬위원회, 『주한 일본공사관 기록』1~40, 국사편찬위원회, 1986~1994.
  • 송병기·박용옥·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1~4, 국회도서관, 197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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