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포도(乾葡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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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포도.

개설

말린 포도로 조선시대에 충청도의 공물이었다. 민간에서는 건포도를 이용한 음식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듯하지만, 왕실에서는 제사에 과실 제물의 하나로 올리거나, 다른 조과(造菓)와 함께 담아 각종 진연(進宴)·진찬(進饌)·반과상(飯果床)에 차렸다.

원산지 및 유통

포도의 원산지는 서아시아이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조선시대에 포도는 강원도, 건포도는 충청도 지방의 공물이었다. 충청도에서 진상한 건포도를 어떤 종류의 포도로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기록상으로는 수정포도(水精葡萄)·마유포도(馬乳葡萄)·산포도(山葡萄) 등이 보인다. 『도문대작(屠門大嚼)』에 따르면, 조선중기까지는 마유포도가 드물었다고 한다.

조선초기부터 왕실과 민가에서 소비되었던 것은 수정포도였다. 왕실의 경우, 태조 때 왕이 병중에 수정포도를 먹고 싶어 하자, 김정준(金廷雋)이 산포도 1상자를 바쳤고(『태조실록』 7년 9월 1일), 한간(韓幹)이 수정포도를 구해 바치자 태조의 병이 회복되었다고 한다(『태조실록』 7년 9월 3일). 세종 역시 병이 나서 포도를 맛보려 했으나 절후가 늦어 구하지 못하자, 정척(鄭陟)이 자기 집 정원의 수정포도를 올린 이후 매년 진상하였고, 세조에게도 바쳤다고 한다(『성종실록』 11년 8월 2일). 산포도는 왕머루를 의미하는데, 수정포도나 마유포도에 비해 넓은 지역에 분포하였으며, 왕실에서 산포도정과를 만들 때 흔히 이용하였다.

연원 및 용도

건포도를 만드는 방법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제민요술(齊民要術)』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 보인다. 아주 잘 익은 포도를 알알이 조심스럽게 따서 터지지 않게 주의하며 꼭지를 없앤 후, 꿀 2푼을 섞어 4~5번 끓어오르면 건져내서 그늘에 말리면 맛도 좋고 여름에도 상하지 않는 건포도가 된다. 『농정신편(農政新編)』에도 이와 비슷한 건포도 만드는 법이 보인다.

건포도는 그 자체를 다른 과실 등과 함께 그릇에 담아 제사상이나 잔칫상·다과상에 올리기도 했지만,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의 방법대로 꿀이나 설탕을 묻히거나 끓여서 건포도 정과를 만들기도 했다. 『일성록』의 1795년(정조 19) 1월 21일 기록을 보면, 건포도는 경모궁 전작례(奠酌禮) 때에 제물(祭物)로서 다른 과실들과 함께 올랐다. 그 밖에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정해)진찬의궤((丁亥)進饌儀軌)』, 『(임진)진찬의궤((壬辰)進饌儀軌)』, 『(임인)진연의궤((壬寅)進宴儀軌)』, 『(신축)진찬의궤((辛丑)進饌儀軌)』 등에 보이는 연회상에서 각색 정과(正果)·당당(唐糖)·당속정과(糖屬正果) 등을 차리는 데 건포도가 쓰였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농정회요(農政會要)』
  • 『도문대작(屠門大嚼)』
  • 『(신축)진찬의궤((辛丑)進饌儀軌)』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임인)진연의궤((壬寅)進宴儀軌)』
  • 『(임진)진찬의궤((壬辰)進饌儀軌)』
  • 『(정해)진찬의궤((丁亥)進饌儀軌)』
  • 안종수, 『農政新編』(고전국역총서 2), 농촌진흥청, 2002.
  • 한희순·황혜성·이혜경, 『李朝宮廷料理通考』, 학총사,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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