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염(建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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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남송(南宋) 시대 고종(高宗)이 사용한 연호(1127년~1130년).

개설

중국 남송의 초대 황제인 고종이 사용한 2개의 연호 가운데 첫 번째 연호로(1127년~1130년), 남송의 첫 번째 연호이기도 하다.

건염(建炎) 연호를 사용하는 동안 남송은 고려(高麗)에 사신을 보내어 금(金)나라와의 관계에서 남송의 편을 들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당시 패권을 잡고 있던 금나라로부터 피해를 입을 것을 염려하여 이 요청을 거절하였다. 이러한 사정이 있기는 하였지만, 사실 이 시기에 고려는 사대 관계에 있던 금나라보다 남송과 더 강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현종실록(顯宗實錄)』현종8년(1667년) 7월 10일자 기사에서는 이때의 고려와 남송 간의 관계를 언급하며, 고려가 대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송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청(淸)나라와 사대관계를 맺게 된 조선(朝鮮)의 상황을 고려의 상황과 연관시켜 살펴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부득이하게 청과 사대 관계를 맺게는 되었지만, 고려가 남송과의 관계를 잘 유지한 것과 같이, 자강(自强)을 바탕으로 청나라와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이 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주로 사회가 불안할 때, 건염 연간을 많이 인용한다. 이는 건염 연간에 남송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사회를 안정시켰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송사(宋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