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산도(居山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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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함경도 북청(北靑)의 거산역을 중심으로 편제한 역도.

개설

거산도(居山道)는 4군 6진의 개척과 더불어 함경도의 역로(驛路)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설치된 역도(驛道)이다. 거산도 영역은 고려말 이후 우리 영토로 편입된 지역으로, 1440년(세종 22) 홍원의 신은참에서 길주의 고참까지를 관할하는 역도로 설치되었다. 한때 다른 역도와 통폐합되었지만, 세종 30년에 다시 찰방을 파견하면서 고산도·거산도·수성도의 편제는 복구되어 이후 큰 변화없이 1462년(세조 8)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리게 되었다.

내용 및 특징

거산도는 고산도(高山道)·수성도(輸城道)와 함께 함경도 행정 구역에 속한 역도이다. 거산도 영역은 고려말 이후 우리 영토로 편입된 지역으로, 조선초에 이르러 역도 체계에 편제되었다.

여진족이 세거하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처음에는 여진족이 사용하던 역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세종대에 변경하였다. 예를 들면 1435년(세종 17)에는 경원(慶源)의 호질가참(好叱家站)을 마유(馬乳), 종성(鐘城)의 백안수소참(伯顔愁所站)을 무안(撫安), 농소평참(農所平站)을 농교(農郊), 가을벌참(加乙伐站)을 역산(櫟山)으로 바꾸었다.

변천

거산도의 변화는 함경도 지역의 역도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고려의 역도를 계승한 조선 왕조가 언제부터 역도를 개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태조실록』에 따르면, 1396년(태조 5) 7월에 고려시대의 5도(道) 양계(兩界)를 점차 개편하면서 서북면의 군현을 개정하였다. 그 뒤 1398년(태조 7)에는 동북 지방의 역을 정비, 신설하면서 함경도 지역의 역도를 개편하여, 고려시대에 개성의 산예역(狻猊驛)에서 동계 선덕진의 선덕역(宣德驛)까지만 개설되었던 역로를 홍원(洪原)의 신은참(新恩站)에서 경원의 강양참(江陽站)까지 확대하였다.

이러한 역도 재편 작업은 태종과 세종대에도 5도 양계를 8도 체제로 개편하면서 지속되었다. 세종대에는 4군 6진의 설치를 계기로 북방 개척에 주력하였는데, 그에 따라 역참을 신설하는 지역도 확대되었다. 이는 신왕조의 개창 이후 북방 개척 의지에 따라 새롭게 역로를 정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태조 이후 신설한 역을 관리하기 위해 역도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리하여 거산도가 속한 함경도에는 1421년(세종 3)에 고산도·시리도(施利道)·주천도(酒泉道)를 편성하였다. 이어 1440년에는 안변(安邊)의 고산참(高山站)에서 함흥(咸興)의 덕산참(德山站)까지를 고산도, 홍원의 신은참에서 길주(吉州)의 고참(古站)까지를 거산도, 경성(鏡城)의 명원참(明原站)에서 경원의 마유참까지를 수성도로 개편하고, 찰방(察訪)의 주관 아래 운영하도록 하였다.

그러다 1446년(세종 28)에는 함경도의 역도 체제가 고산도·거산도·명원도(明原道)·풍산도(豊山道)의 4개 역승(驛丞) 체제로 바뀌었다. 이후 1462년에 『경국대전』이 편찬되면서 조선의 역도-속역 체제가 완성되었는데, 함경도는 14개의 속역을 관할하는 고산도, 19개의 속역을 관할하는 거산도, 그리고 역시 19개의 속역을 관할하는 수성도로 다시 개편되었다. 거산도의 속역은 북청의 거산, 홍원의 함원(咸原)·신은(新恩)·평포(平浦), 북청의 오천(五川)·제인(濟人), 이성의 시리(施利)·곡구(谷口), 단천의 기원(基原)·마곡(麻谷), 길성의 영동(嶺東)·임명(臨溟)·웅평(雄平), 명천의 명원(明原)·고참(古站), 감산의 종포(終浦)·웅이(熊耳)·허천(虛川), 삼수의 적생(積生) 등 19개이다.

그런데 1808년(순조 8)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거산도에는 함원·신은·평포·오천·자항(慈航)·제인·황수(黃水)·종포·웅이·호린(呼麟)·허천·허린(虛麟)·혜산(惠山)·적생·시리·곡구·기원·웅평·임명·읍명(邑明)·고참 등 21개 속역이 편제되어 있었다. 『경국대전』 시기의 마곡역·영동역·명원역이 폐지되고, 자항역·허린역·혜산역이 신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908년(순종 1)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22개의 속역을 관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거산도는 1896년(고종 33) 1월 18일,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만기요람(萬機要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조병로, 『韓國近世 驛制史硏究』, 국학자료원, 2005.
  • 정요근, 「조선초기 역로망의 전국적 재편-교통로의 측면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4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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