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합(甘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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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조갯과에 속하는 꼬막의 한자어.

개설

감합(甘蛤)은 전라도, 충청도, 함경도 지역에서 생산되어 건어물 상태로 유통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생산량 대부분을 원나라에 조공으로 바쳤고, 조선시대에는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선물로 이용하였다.

원산지 및 유통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토산조(土産條)」를 보면, 감합은 전라도·충청도·함경도 지역에서 생산되었다. 이보다 앞서 기록된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감합은 전라도 지역에서만 공물로 바쳤다[『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당시 사정상 생물로 유통되기보다는 대개 말린 건어물 형태로 유통되었다.

연원 및 용도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괴륙(魁陸), 괴합(魁蛤), 감(蚶)과 같이 감합을 부르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이 있다. 감합은 와롱자(瓦壟子)·와옥자(瓦屋子)·복로(伏老)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껍데기 모양이 기와지붕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들이다. 그러나 실제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강요주(江瑤珠)라는 별칭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의 지나친 조공 요구 때문에 국내에서는 감합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선비들끼리 서로 부담 없이 주고받는 선물로 감합을 사용하였다. 『약천집(藥泉集)』에서 남구만(南九萬)은 박세당(朴世堂)이 선물로 보낸 포도 40송이에 대한 답례로 감합 꼬치와 삶은 곤포를 보내주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약천집(藥泉集)』
  • 『자산어보(玆山魚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