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사(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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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88개 자복사 가운데 하나로, 경상남도 김해시신어산에 있던 절.

개설

감로사(甘露寺)는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었던 절로, 1237년(고려 고종 24)에 해안(海安)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이곳에 있던 불상의 연대가 통일신라말기인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부터 있던 절을 이때 중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원감 국사 충지(沖止)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조선 태종 때 자은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되었고 이후 18세기까지 존속하였다. 현재 감로사지(甘露寺址)는 김해시 상동면 감로리에 있는데, 사지에는 부도 2기만 남겨져 있다. 감로사에 있던 불상은 용화사에, 석탑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존되고 있다.

내용 및 변천

(1) 조선전기

조선시대에 들어와 1407년(태종 7) 12월, 김해(金海) 감로사(甘露寺)는 자은종의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자복사찰은 나라와 고을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거나 또는 지정하는 사찰이었다. 당시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는 이전 11개(혹은 12개)에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는데, 김해 감로사는 자은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고려 고종 때 창건되어 원 간섭기에 융성했던 감로사가 조선초에도 지방의 명찰(名刹)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조계종 소속이었던 감로사가 자은종으로 바뀐 점도 주목된다. 자복사찰로 지정된 이후 상당히 윤택한 사찰로 유지되었음은 『성종실록(成宗實錄)』에서 "감로사의 노비가 수백 명에 이른다."(『성종실록』 5년 7월 13일)고 한 기사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2) 조선후기

감로사의 「진남루석주기(鎭南樓石柱記)」에는 1731년(영조 7)에 24개의 석주(石柱)를 세워 감로사에 진남루(鎭南樓)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감로사의 정확한 폐사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18세기까지는 존립한 사찰이었음은 분명하다. 부속 암자로 남암(南庵), 중암(中庵), 서암(西庵), 도솔암(兜率庵), 백련암(白蓮庵), 석영암(石永庵) 등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어서 그 규모도 적지 않은 사찰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현재는 이들 암자 역시 모두 남아 있지 않다.

(3) 현대

감로사지에는 3층석탑의 기단부와 지붕돌, 연화대석(蓮花臺石), 귀부(龜趺) 등이 남아 있었으나 1975년 부산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 보존되고 있다.

본래 폐사된 감로사의 절터에 있었던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은 1947년 인근 강변에 있던 것을 양산시 물금읍 용화사(龍華寺)에 옮겨 봉안하였다. 이것이 용화사석조여래좌상(龍華寺石造如來坐像)으로, 1968년 12월 보물 제491호로 지정되었다. 불상 높이는 1.25m로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감로사지에는 석종형 사리부도 2기만이 남아 있으나 누구의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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