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선(却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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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왕이 수라를 거부하는 것.

개설

조선시대에 왕은 감선(減膳), 철선(撤膳), 각선(却膳) 등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감선은 나라의 변고가 있을 때 반찬 가짓수나 식사 횟수를 줄이는 것이고, 고기반찬을 먹지 않는 것은 철선, 아예 수라를 들지 않고 단식하는 것은 각선이라 한다.

내용 및 특징

각선의 각(却)은 물리칠 각이고, 선(膳)은 반찬 선이다. 따라서 밥상을 물리치는 것은 왕이 상중(喪中)에 애도의 뜻으로 또는 국가에 큰일이나 곤란한 일이 있을 때 단식으로 본인의 뜻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각선의 예를 살펴보면, 인종의 경우에는 병을 숨기고 각선을 하였다. 1545년(인종 1) 왕이 소절(小節)을 굳게 지켜 병을 숨기고 각선하니 대사헌(大司憲)송인수(宋麟壽)와 대사간(大司諫)이윤경(李潤慶)이 종척의 중신을 사옹제조(司饔提調)로 삼아 날마다 번갈아 입시하여 찬선을 드시는 여부를 살펴 옥체가 회복되시기를 기다리게 하고, 또 내의(內醫)가 날마다 진찰하여 증세를 다스리게 하였다(『인종실록』 1년 2월 13일).

영조는 당파싸움을 막기 위해 각선을 하였다. 1737년(영조 13) 왕이 폐합(閉閤)하신 뒤에 당파가 없어질 것 같았는데 없어지지 않았고, 대고(大誥)하신 뒤에도 당파가 없어질 것 같았는데 또한 없어지지 않았으며, 밤에 유시하신 뒤에도 당파가 없어질 것 같았는데도 끝내 없어지지 않아서 마침내 각선을 하였다(『영조실록』 13년 10월 14일).

정조대에도 여러 번 각선을 행하였다. 1786년(정조 10) 명성대비께서는 사가의 어버이의 일로 희정당에 나아가 통곡하셨고, 인원대비께서는 선왕조 임신년에 수라를 물리고[却膳] 왕위를 사양한 일로 선화문에 나가서 백관들에게 하교하셨다(『정조실록』 10년 12월 1일). 이틀 후에 이담(李湛)의 처벌에 대한 계사를 다시 올리니 자전께서 애통해하고 간곡한 전교는 종사를 위하고 의리를 밝히려는 괴로운 마음과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으로서 탕약을 들지 않고 수라를 물리기까지 하였다(『정조실록』 10년 12월 3일). 이후에도 자전(慈殿)께서 저녁 수라를 들지 않고 소청을 따르라고 권하기에 왕도 수라를 들지 않고 간청하여 4일 각선을 하였다.

참고문헌

  • 한복진, 『조선시대 궁중의 식생활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 한복진, 『왕실문화 심층탐구-궁중음식, 조선을 담다! 음식에 숨은 조선왕조 이야기』, 국립고궁박물관, 2010.
  • 함규진, 『왕의 밥상』, 21세기북스, 2010.
  • 황혜성 외, 『李朝宮廷料理通攷』, 학총사, 1957.
  • 황혜성 외, 『한국음식대관』6권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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