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Kadh2020 Barbara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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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한국학교육에서의 게임활용"
이지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인문학연구원)
본 토론문은 바바라 월 선생님이 이번 학회에서 발표하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한국학교육에서의 게임활용”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던 “Dynamic Texts as Hotbeds for Transmedia Storytelling: A Case Study on the Story Universe of The Journey to the West”(Wall, 2019)를 참고로 작성하였습니다. 따라서 학회에서 발표되는 내용과 본 토론문을 통해 제가 드리는 질문 사이에 얼마간의 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학과 문화인류학의 교차점에서 디지털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저로서는 월 선생님의 접근이 매우 새롭고 낯설었음 역시 미리 밝히고자 합니다. 월 선생님이 논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결과들에 대한 제 질문은 이러한 배경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월 선생님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디지털화 이후 새롭게 등장한 현상으로 보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이것이 오히려 스토리텔링의 역사의 한 부분임을 강조합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탑에 새겨진 조각에서부터 최근 연재된 웹툰 ‘이말년의 서유기’와 드라마 ‘화유기’ 등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생산된 서유기의 ‘변주(variations)’들을 다루면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하는 동적 텍스트로서의 서유기의 성격이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이 창조적으로 ‘재조합(recombination)’된 여러 변주들을 트리 다이어그램을 통해 시각화하고 분석함으로써, 이 논문은 서유기라는 텍스트의 ‘가변성(variability)’과 트랜스미디어 텍스트의 역동성을 흥미롭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논문의 초점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분석하기 위한 도구를 제공하는 데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만, 논문에서 제시된 분석결과를 보면서 여러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서유기’를 변주하고 있는 각각의 텍스트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매체들이 이 이야기의 세계가 전개되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에 관한 것입니다. 글의 도입부에서 헨리 젠킨스의 ‘추가적 이해(additive comprehension)’에 관한 논의가 인용되고 있는데, 이에 관한 선생님의 생각을 더 들었으면 합니다. 매주 연재되는 웹툰과 탑에 새겨진 조각이 전체 이야기 세계에 기여하거나 참여하는 방식, 그리고 매체의 성격에 따라 이야기의 요소들이 조합되고 변주되는 방식은 상당히 다를 것 같습니다. 트리 다이어그램을 통해 시각화된 형태에서도 여러 차이들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와 연결해서, 서유기 텍스트를 학생들이 ‘게임’으로 변주해 보도록 하는 실험에 관해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웹툰이나 TV 드라마, 조각이나 탈춤 등 다른 채널들과 비교할 때, 게임이라는 양식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다시 말해 상호작용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며 이 상호작용의 형식이 대개 어떤 과업을 수행하는 형태로 구성되어야 하는 등의 특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스토리를 게임화하는 작업을 통해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게임화 작업을 통해 이 이야기의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게 될 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게임화라는 실험적 작업과 이론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시너지가 발생했는지, 또 이를 실행하는 데 있어 구체적인 어려움은 없었는지, 이런 교과과정을 기획하고자 할 때 특별히 고려할 부분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도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서유기’라는 텍스트의 특이성에 관한 것입니다. 논문에 고우영의 ‘서유기’가 언급되었기 때문인지 고우영이 그린 또다른 유명한 작품의 ‘원작’인 ‘삼국지’와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삼국지도 게임이나 소설, 만화 등의 형태로 꽤 많이 변주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서유기’와 ‘삼국지’가 변주되는 양상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꽤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온라인에서 관찰한 바로는 삼국지의 경우엔 끊임없이 ‘원작’(정확히 그것이 어떤 판본을 지시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을 참조하고 이에 관해 논쟁하는 방식의 팬덤이 존재한다면, ‘서유기’는 훨씬 유연한 형태의 변주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차이들이 선생님이 사용하는 양적 접근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거나 설명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