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2-R2-22A
에피소드
목차
왕을 낳은 후궁 유빈 박씨의 죽음과 순조의 효심 》 창경궁 환경전을 생모 유빈 박씨의 빈궁(殯宮) 처소로 삼은 순조의 효심
Story
1822년(순조 22) 음력 12월 26일 생모 유빈 박씨의 병세가 심해지자 순조는 약방에 속해 있던 세 명의 제조에게 모두 직숙하라는 명을 내렸다. 유빈 박씨의 진료를 담당했던 의관도 직숙하고, 내의녀도 대령하도록 하였다. 순조는 생모인 유빈 박씨의 병세가 위급해지자 종묘[廟], 사직[社], 산천[山川]에 날을 점치지 말고 기도제(祈禱祭)를 설행하라는 전교를 내렸다가 다시 거두기도 하였다. 순조는 생모의 죽음 앞에서 애가 탔다. 그날 밤 해시(亥時)에 창덕궁 보경당에서 유빈 박씨가 숨을 거두었다. 이어서 내시가 유빈 박씨가 평상시 입던 웃옷을 가지고 지붕에 올라가 “가순궁 복(嘉順宮 復)”이라고 외쳤다. 가순궁 유빈 박씨가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절차였다. 낳아주신 어머니인 유빈 박씨가 죽자, 순조는 “정성이 모자라서 26일 해시에 가순궁께서 보경당에서 졸서(卒逝)하였으니, 망극하고 망극할 뿐이다. 마땅히 행해야 할 예절을 해조에서 거행하도록 하라”고 하교하였다. 유빈 박씨는 정조의 간택 후궁으로 왕을 낳은 후궁이었다. 순조의 생모로서 순조의 재위 중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인 순조가 직접 어머니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알린 것이다. 낳아주신 어머니의 죽음을 알린 순조는 가장 먼저 시신을 보관해둘 장소를 빈소라 하지 않고, 빈궁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부득불’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빈궁을 환경전으로 정하였다. 환경전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서북쪽에 있는 전각이다. 1688년(숙종 14) 인조 계비인 장렬왕후의 빈전이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그 후 왕비들의 빈전으로 종종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이례적으로 1800년(순조 즉위년)에 정조가 승하하고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정조의 빈전을 환경전에 설치하기도 하였다. 그 후 순조 재위 시절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사도세자의 빈인 혜경궁,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의 빈전이 모두 환경전에 마련되었다. 1830년(순조 30) 5월에 효명세자가 갑자기 죽었을 때에도 순조는 왕세자의 빈궁을 환경전에 설치하도록 하였다. 후궁의 빈소로 환경전을 선정하는 것은 ‘유례(踰禮)’에 해당하였다. 후궁의 분수에 맞지 않는 예임을 지적하는 신하들의 상소가 올라왔다. 후궁의 상례를 임금이 거처하는 곳[大內]에서 치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그에 더하여 후궁의 빈소를 왕과 왕비의 빈전으로 자주 사용되는 환경전에 마련하도록 한 순조의 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상소였다. 그러나 순조는 자신의 뜻을 꺾지 않고, 오히려 상소를 올린 엄도(嚴燾)와 권돈인(權敦仁)을 멀리 귀양 보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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