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축은 종묘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향 전에 국왕이 서명한 축문과 향을 헌관에게 전달하는 의식이다. 향은 제향에서 신을 부르는 의물(儀物)이며, 축문은 신에게 아뢰는 글이다. 이들 향축은 교서관(校書館)에서 담당하여 준비하였다. 정전 곁에 마련된 향실(香室)에서 교서관 관원이 숙직하며 축문을 작성하고 향을 제향별로 밀봉(密封)하여 올리면 국왕이 직접 서압(署押)을 한 후에 헌관에게 전하였다. 국왕이 향축을 전하는 의식은 『국조오례의』에 제정되어 있는데, 사직・종묘・영녕전의 대사(大祀)와 풍운뇌우(風雲雷雨)・선농(先農)・선잠(先蠶)・운사(雩祀)・문선왕(文宣王)의 중사(中祀)는 국왕이 친히 향을 전하고, 그 외 중사 이하는 하루 전에 전교서(典校署)의 관원이 향축을 갖추어 올리면 승지가 외정(外庭)에서 대신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국조오례의』에 제정된 전향축 절차를 국왕이 직접 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으며, 승지가 전하거나 승지가 대압(代押)하여 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제향에 사용하는 향 자체에 대해 위의(威儀)를 높이려는 영조대에 이르러 관련 절차가 재정비되어 친히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조가 동왕 12년 경덕궁으로 이어할 때, 파자전교(芭子廛橋) 앞에서 의궤채여를 받들고 오던 향실 관원을 마주쳤다. 영조는 연에서 내려 앞서 출발하라고 명하자, 신하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만류하였다. 그러자 영조는 영수각의 어첩(御帖)에 배례한 자신인데, 향실과 축식이 어찌 어첩과 차이가 있겠냐면서 천승(千乘)의 존엄으로도 낮추고 굽히는 곳이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고 하여, 향실 관원을 먼저 보냈다. 예제사회에서 향축의 중요성을 다시금 각인시켜 준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