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상小方牀은 국장의 발인 때 대여大輿에 설치하여 재궁梓宮을 받치고 고정시키는 네모난 평상이다. 『순조국장도감의궤純祖國葬都監儀軌』의 「일방의궤一房儀軌·조작질造作秩」에 소방상 그림이 실려 있다. 『순조국장도감의궤』는 1834년(헌종 즉위) 11월부터 1835년 4월까지 치러진 순조(1790~1834)의 국장 의식을 담은 의궤이다.
‘소방상’이란 제목 아래 세 개의 그림이 있는데 상단의 좌측에 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기둥은 대여의 내기목內機木에 설치하는 입주立柱의 모습이고 우측은 소방상의 좌우 기목에 설치하는 현주懸柱를 그린 것이다. 그리고 하단의 그림이 소방상의 모습인데 여기에는 소방상에 현주를 세우고 횡량橫樑을 설치한 상태를 묘사하였다. 소방상은 네 개의 기목機木이 기틀이 되는데 좌우의 두 기목은 길이가 8척 3촌이고 너비가 3촌 5분, 두께가 3촌이다. 반면 전후의 기목은 길이가 4척 7촌이고 너비와 두께는 좌우 기목과 동일하다. 네 개의 기목 끝을 맞추어 직사각형의 틀을 만든 다음 횡목 4개를 좌우 기목 사이에 끼워 고정시킨다. 그리고 전후 기목의 안쪽을 1촌 정도 파내어 답판踏板을 얹어 고정시키면 상여에 올리는 평상이 된다. 기목의 바깥 쪽에는 대원환大圓環을 설치하여 재궁을 얹은 후 화주和紬의 끈으로 동여매어 고정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좌우 기목의 중앙 상단에 구멍을 뚫어 기둥을 세우는데 이 기둥을 ‘현주懸柱’라고 하였다. 현주는 소방상과 대여를 연결하는 횡량橫樑의 지지대 역할을 해준다. 현주는 길이 5척 3촌의 박달나무로 만들었다. 기둥의 아래 부분에는 두 개의 철凸을 만들어 기목의 구멍 속으로 꿰어 밖으로 내고 그 철 끝에 구멍을 뚫고 나무를 깎아 꿰어 고정시킨다. 『정조국장도감의궤』의 「소방상」에 나오는 현주의 그림에는 기목에 들어가는 하단 돌출부가 잘 그려져 있지만 이후의 국장도감의궤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기목에 끼운 후 그림에 보이는 것 같이 현주의 좌우에 철주鐵柱를 달아 기목에 다시 연결하고 용지龍支를 하단에 붙여 고정시켰다. 왼편의 입주는 대여의 지대목地臺木에 세우는 기둥인데 소방상 현주 외부에 위치한다. 현주와 입주의 상단에 보이는 구멍으로 횡량橫樑(가로 대들보)를 끼워서 대여와 소방상을 고정시키고, 대여의 지붕을 받치는 데에 사용한다.
소방상 그림은 『국조오례서례』와 『국조상례보편』 모두에 실려 있다. 전자는 소방상과 지대목을 같이 그린 그림이며, 후자는 소방상과 현주만을 그린 것이다. 반면 국장도감의궤에 소방상 그림은 『인원왕후국장도감의궤』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대여소방상도」라는 이름으로 대여와 같이 있다. 그리고 『정조국장도감의궤』부터 위와 같이 소방상, 현주, 입주가 함께 그려진 「소방상」그림이 나타난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