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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4월 25일, [[경운궁중건도감]] 의궤당상 [[이재극|이재극(李載克)]]이 [[조선_고종|고종]]에게 “경운궁(慶運宮) [[대안문|대안문(大安門)]]의 수리를 음력 4월 12일로 길일(吉日)을 택하여 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상주하였다. 이때 고종은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치되 아뢴 대로 거행하라”고 함으로써 덕수궁의 “대안문(大安門)”은 “[[대한문|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za_14304025_002 고종실록 43년 4월 25일: 경운궁의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치다]</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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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앙투아네트 손탁(Antoniette Sontag, 1854∼1925)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서양식 호텔을 지었다. 자신의 이름을 따와서 손탁호텔이라 붙였다. 앙투아네트 손탁은 프랑스계 독일인이었다. 손탁은 1885년에 주조선 러시아 제국 초대공사 카를 베베르가 부임하던 1885년에 한양 땅을 밟아서 1909년 조선을 떠날 때까지 25년 간 한국에 거주하였다. 손탁은 베베르의 소개로 1886년 경복궁의 양식 조리사로 임명되었다. 1896년에 아관파천이 성공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1902년에는 고종으로부터 덕수궁 근처에 있는 황실 소유의 부지를 하사 받았다. 같은 해에 손탁 호텔을 개업하여 그 지배인이 되었다. <ref>[이순우, 『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손탁호텔』, 하늘재, 2012.]</ref><br/> 신축 당시 황실의 '프라이빗 호텔'. 즉 예약 손님만 투숙하는 호텔로 운영되었다. 건물의 위층은 귀빈실로, 아래층은 손탁의 거주공간을 비롯해 일반 객실과 식당 등을 배치한 구조로 알려졌다.<ref>[이순우, 『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손탁호텔』, 하늘재, 2012.]</ref><br/>  호텔의 1층에는 서울 최초의 커피숍이 있었는데, 서울에 체류하던 서양인들이 자주 찾아 정동구락부가 결성되었다. <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009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정동구락부.]</ref><br/> 미국의 소설가 잭 런던 또한 종군 기자로 러일전쟁 취재 차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호텔에 묵었다. <ref>[잭 런던 지음, 윤미기 옮김,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 한울 아카데미, 2011.]</ref><br/>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도 호텔에 투숙하였다.<ref>[신명호,『고종과 메이지의 시대』, 역사의 아침, 2014, 21~35쪽.]</ref><br/> 외국인 손님을 맞을만한 마땅한 숙박시설이 드문 터라 서양에서 서울에 막 도착한 외국인이 짐을 푼 곳은 사실상 호텔이었다.  
[[경운궁중건도감의궤|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의 [[대한문_상량문|대한문(大漢門) 상량문(上樑文)]]을 보면, “황하가 맑아지는 천재일우의 시운을 맞았으므로 국운이 길이 창대할 것이고, 한양(漢陽)이 억만년 이어갈 터전에 자리하였으니 문 이름으로 특별히 건다”고 하였다. <ref>[https://www.gogung.go.kr/ancientBooksView.do?bbsSeq=6157&bizDiv=2 대한문 상량문,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ref> [[대한문|대한문(大漢門)]]이라는 이름은 한양(漢陽)을 수도로 하여 새로 태어난 대한제국이 영원히 창대하라는 염원을 담은 것임을 알 수 있다.<ref>[http://www.deoksugung.go.kr/board/view?no=533&board_id=FAQ 대한문 명칭에 대하여, 덕수궁소식]</ref><br/>
 
그런데, 세간에는 일이 [[배정자|배정자(裵貞子)]]라는 [[이토_히로부미|이토 히로부미]]의 내연녀와 관련이 있다는 속설이 돌았다.<br/>
 
일제강점기 대중잡지인 [[별건곤|『별건곤』]] 제33집(1933년 7월 1일자)에서  ‘문외한’이란 가명의 필자는 ‘대한문’ 관련 일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원래 대안문(大安門)이었는데, 안(安)자가 계집 녀(女) 자에 갓쓴 글자이고 양장하고 모자 쓴 여자인 [[배정자]]의 대궐 출입이 빈번해서 ‘상서롭지 못하다’는 말쟁이의 말로 인해 대한문으로 고쳤다.”<ref>[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004080900001 이기환, "갓 쓴 여자 재수없어"…덕수궁 대안문이 대한문 된 사연, 경향신문 2020-04-08]</ref><br/>
 
배정자는 1870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배지홍]]실각한 [[흥선대원군_이하응|흥선대원군]]의 추종세력이란 이유로 처형당한 후 1885년에 일본으로 보내졌다. 1887년 [[김옥균]]의 소개로 [[이토_히로부미|이토 히로부미]]를 만나게 되었고, 조선으로 돌아와서는 일본의 특급 스파이 역할을 하였다고 전한다.<br/>
 
배정자 이외에도 러시아공사 [[카를_베베르|베베르]]의 부인과 그의 언니 [[앙트와네트_손탁|앙트와네트 손탁]]도 이 시절 대안문을 자주 드나들던, 모자 쓴 양장의 여인들이었다.
 
 
 
 
 
1902년 독일 여성 손탁(Antoniette Sontag, 1854∼1925)이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세운 서양식 호텔이다. 손탁은 주한 러시아 공사 위베르(Waeber)를 따라 1885년 한성에 들어온 인물로, 고종에게서 받은 서울 중구 정동 땅에 2층 양옥을 지어 1902년 손탁 호텔을 개장했다. 25개의 객실을 갖춘 2층짜리 서양식 건물인 손탁호텔의 2층은 귀빈실로 사용됐고, 1층은 일반 객실, 식당, 커피숍이 배치돼 있었다.
 
 
이후 손탁호텔은 민영환, 이완용, 윤치호 등 ‘정동구락부’의 회합 장소로도 쓰였으며 1905년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간 을사늑약을 배후 조종하기 위해 머물렀다. 또한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도 이 호텔에 묵었고, 《톰 소여의 모험》을 집필했던 미국의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도 이곳에서 묵은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손탁호텔은 1909년 손탁이 한국을 떠나면서 팔레호텔의 주인 보에르에게 경영권이 넘어갔고, 1917년엔 건물부지가 이화학당으로 넘어가 여학생 기숙사로 사용됐다. 이후 1922년 이화학당의 프라이홀(Frey Hall) 신축을 위해 철거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손탁호텔을 철거하고 세워진 프라이홀은 1975년 5월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 터는 이화여자고등학교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손탁호텔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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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4일 (화) 11:32 기준 최신판

손탁_호텔의_투숙객들

Story

1902년, 앙투아네트 손탁(Antoniette Sontag, 1854∼1925)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서양식 호텔을 지었다. 자신의 이름을 따와서 손탁호텔이라 붙였다. 앙투아네트 손탁은 프랑스계 독일인이었다. 손탁은 1885년에 주조선 러시아 제국 초대공사 카를 베베르가 부임하던 1885년에 한양 땅을 밟아서 1909년 조선을 떠날 때까지 25년 간 한국에 거주하였다. 손탁은 베베르의 소개로 1886년 경복궁의 양식 조리사로 임명되었다. 1896년에 아관파천이 성공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1902년에는 고종으로부터 덕수궁 근처에 있는 황실 소유의 부지를 하사 받았다. 같은 해에 손탁 호텔을 개업하여 그 지배인이 되었다. [1]
신축 당시 황실의 '프라이빗 호텔'. 즉 예약 손님만 투숙하는 호텔로 운영되었다. 건물의 위층은 귀빈실로, 아래층은 손탁의 거주공간을 비롯해 일반 객실과 식당 등을 배치한 구조로 알려졌다.[2]
호텔의 1층에는 서울 최초의 커피숍이 있었는데, 서울에 체류하던 서양인들이 자주 찾아 정동구락부가 결성되었다. [3]
미국의 소설가 잭 런던 또한 종군 기자로 러일전쟁 취재 차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이 호텔에 묵었다. [4]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도 이 호텔에 투숙하였다.[5]
외국인 손님을 맞을만한 마땅한 숙박시설이 드문 터라 서양에서 서울에 막 도착한 외국인이 짐을 푼 곳은 사실상 이 호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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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01 Story Episode 손탁 호텔의 투숙객들 손탁 호텔의 투숙객들 손탁 호텔의 投宿客들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01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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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01 손탁 isRelatedTo 지배인
E2-001 베베르 isRelatedTo 손탁을 고종에게 소개
E2-001 이완용 isRelatedTo 정동구락부
E2-001 윈스턴 처칠 isRelatedTo 투숙객
E2-001 잭 런던 isRelatedTo 투숙객
E2-001 이토 히로부미 isRelatedTo 투숙객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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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위키백과 앙투아네트 손탁 https://ko.wikipedia.org/wiki/앙투아네트_손탁
해설 나무위키 손탁호텔 https://namu.wiki/w/손탁호텔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문화원형백과>서울 근대공간 손탁여사와 손탁호텔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9351&docId=1766131&categoryId=49351
참고 한국콘텐츠진흥원>문화콘텐츠닷컴>서울 근대공간 디지털 콘텐츠 손탁여사와 손탁호텔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43400570001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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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현광호. 「손탁(Antoniette Sontag)의 재한 활동」, 『숭실사학』 35, 숭실사학회, 2015.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60113
논문 황윤석.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밀사’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 『문화와 융합』 40-6, 한국문화융합학회, 2018.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397633
논문 황윤석. 「한말 궁중의 서구문화 유입과 대중문화 -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논총』 37-1, 명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6.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81546
단행본 이순우, 『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손탁호텔』, 하늘재, 2012.
단행본 한스 알렉산더 크나이더 지음, 최경인 옮김, 『독일인의 발자취를 따라』, 일조각, 2013.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1. [이순우, 『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손탁호텔』, 하늘재, 2012.]
  2. [이순우, 『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손탁호텔』, 하늘재, 2012.]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정동구락부.
  4. [잭 런던 지음, 윤미기 옮김,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 한울 아카데미, 2011.]
  5. [신명호,『고종과 메이지의 시대』, 역사의 아침, 2014, 2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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