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2-R3-19D"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ontextual Relations)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8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S2022-R3-19| 종묘제도의 시행]] 》 새로운 의미의 국가사당 영녕전'''= | ='''[[S2022-R3-19| 종묘제도의 시행]] 》 새로운 의미의 국가사당 영녕전'''= | ||
+ | |||
+ | <!-- | ||
+ | #Links | ||
+ | E2022-R3-19D 종묘 hasContextualElement | ||
+ | E2022-R3-19D 영녕전 hasContextualElement | ||
+ | E2022-R3-19D 불천위 hasContextualElement | ||
+ | E2022-R3-19D 공정왕 hasContextualElement | ||
+ | E2022-R3-19D 목조 hasContextualElement | ||
+ | E2022-R3-19D 사조전 hasContextualElement | ||
+ | E2022-R3-19D 국조오례의 hasContextualElement | ||
+ | E2022-R3-19D 세실 hasContextualElement | ||
+ | E2022-R3-19D 사대봉사 hasContextualElement | ||
+ | E2022-R3-19D 부묘 hasContextualElement | ||
+ | #End | ||
+ | --> | ||
==Story== | ==Story== | ||
5번째 줄: | 20번째 줄: | ||
종묘의 왼쪽에는 영녕전(永寧殿)이 있다. 영녕전의 건립은 정종의 부묘 때 논의되었다. 세종 3년에 공정왕이 승하하자, 부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당시 4대봉사(四代奉祀)는 천하 공통이었다. 태조는 조선의 시조이므로 불천위(不遷位)였으며, 친진(親盡)된 5대 신위는 목조였다. 태종과 세종 등은 논의 끝에, 목조의 신주를 체천(遞遷)하되, 그를 모실 별묘(別廟)를 건립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중국 남송 때 건립한 송 태조의 사조전(四祖殿)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하여 종묘의 서쪽에 별묘를 건립하였으니, 이것이 영녕전이다. | 종묘의 왼쪽에는 영녕전(永寧殿)이 있다. 영녕전의 건립은 정종의 부묘 때 논의되었다. 세종 3년에 공정왕이 승하하자, 부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당시 4대봉사(四代奉祀)는 천하 공통이었다. 태조는 조선의 시조이므로 불천위(不遷位)였으며, 친진(親盡)된 5대 신위는 목조였다. 태종과 세종 등은 논의 끝에, 목조의 신주를 체천(遞遷)하되, 그를 모실 별묘(別廟)를 건립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중국 남송 때 건립한 송 태조의 사조전(四祖殿)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하여 종묘의 서쪽에 별묘를 건립하였으니, 이것이 영녕전이다. | ||
영녕전의 구조는 조실(祧室)의 넓고 좁은 것을 일체 종묘의 제도에 의거하도록 하였다. 이때 참찬 허조가 종묘의 오실이 좁아서 여러 가지로 불편한데 이 구조대로 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제기를 하였다. 세종은 그의 말을 옳다 하고 상왕에게 아뢰도록 하였으나, 태종은 태조로부터 네 임금에 전하여 내려온 이 종묘 제도를 고쳐 지을 수 없다면서, 이 제도에 의거하여 영건하도록 하였다. 그 명에 따라 예조에서는 여러 제도를 검토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 별묘는 정전 네 칸을 세우고, 동·서로 각각 협실 한 칸씩을 지으며, 그 나머지 담이나 섬돌 같은 것은 종묘와 같게 하자고 건의하였다. 따라서 최초의 영녕전은 종묘와 그 규모가 같게 건립되었다. 그 구조는 태조의 사대조를 모시는 정전 4칸과 좌우의 협실 각 1칸씩이었다. | 영녕전의 구조는 조실(祧室)의 넓고 좁은 것을 일체 종묘의 제도에 의거하도록 하였다. 이때 참찬 허조가 종묘의 오실이 좁아서 여러 가지로 불편한데 이 구조대로 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제기를 하였다. 세종은 그의 말을 옳다 하고 상왕에게 아뢰도록 하였으나, 태종은 태조로부터 네 임금에 전하여 내려온 이 종묘 제도를 고쳐 지을 수 없다면서, 이 제도에 의거하여 영건하도록 하였다. 그 명에 따라 예조에서는 여러 제도를 검토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 별묘는 정전 네 칸을 세우고, 동·서로 각각 협실 한 칸씩을 지으며, 그 나머지 담이나 섬돌 같은 것은 종묘와 같게 하자고 건의하였다. 따라서 최초의 영녕전은 종묘와 그 규모가 같게 건립되었다. 그 구조는 태조의 사대조를 모시는 정전 4칸과 좌우의 협실 각 1칸씩이었다. | ||
− | 그런데 영녕전의 사조전으로서의 기능은 성종을 종묘에 부묘할 때에 공정왕을 영녕전의 협실로 조천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영녕전은 사조전과 5대 이상의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인 조묘(祧廟)가 결합된 형태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 + | 그런데 영녕전의 사조전으로서의 기능은 성종을 종묘에 부묘할 때에 공정왕을 영녕전의 협실로 조천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영녕전은 사조전과 5대 이상의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인 조묘(祧廟)가 결합된 형태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친진되었어도 세실로 지정되면 조천하지 않았지만, 체천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신주를 왕릉 근처에 묻지 않고 영원히 영녕전에 봉안하였으니, 영녕전은 또 하나의 불천위 사당이 된 것이다. 그리고 성종 4년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서는 영녕전에서의 제사를 춘추로 맹월상순에 지내도록 규정하였다. 영녕전이 건립된 초기의 제사 규정은 별도로 제정되지 않고 세종실록 「오례」에도 실리지 않았다. 세종은 조천한 묘에는 다만 봄·가을의 대향에만 그 생뢰(牲牢)와 제품(祭品)을 종묘에 견주어 하도록 하였다가, 그 이후 사조전 양 옆의 협실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종묘보다 한 등급 낮춘 예제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
==Semantic Data== | ==Semantic Data== | ||
25번째 줄: | 40번째 줄: |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 | |- | ||
− | | [[E2022-R3-19D]] || [[ | + | | [[E2022-R3-19D]] || [[사조전]] || [[isRelatedTo]]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E2022-R3-19D]] || [[]] || [[isRelatedTo]] || || | + | | [[E2022-R3-19D]] || [[공정왕_묘호]] || [[isRelatedTo]] || || |
|- | |- | ||
− | | [[E2022-R3-19D]] || [[]] || [[isRelatedTo]] || || | + | | [[E2022-R3-19D]] || [[영녕전제향]] || [[isRelatedTo]] || || |
|- | |- | ||
− | | [[E2022-R3-19D]] || [[]] || [[isRelatedTo]] || || | + | | [[E2022-R3-19D]] || [[세실]] || [[isRelatedTo]] || || |
|- | |- | ||
− | | [[ | + | | [[영녕전제향]] || [[영녕전]] || [[isPerformedAt]] || || |
|- | |- | ||
− | | [[ | + | | [[영녕전]] || [[불천위]] || [[isRelatedTo]] || || |
|- | |- | ||
− | | [[ | + | | [[영녕전]] || [[조선_공정왕]] || [[isRelatedTo]] || || |
|- | |- | ||
− | | [[ | + | | [[영녕전]] || [[조선_목조]] || [[isRelatedTo]] || || |
|- | |- | ||
− | | [[ | + | | [[영녕전제향]] || [[국조오례의]] || [[isMentionedIn]] || || |
|- | |- | ||
− | | [[ | + | | [[부묘]] || [[종묘]] || [[isPerformedAt]] || || |
|- | |- | ||
− | | [[ | + | | [[종묘]] || [[사대봉사]] || [[isRelatedTo]] || || |
|- | |- | ||
− | | [[ | + | | [[종묘]] || [[세실]] || [[isPartOf]] || || |
|- | |- | ||
− | | [[ | + | | [[영녕전]] || [[사조전]] || [[isRelatedTo]] || || |
|- | |- | ||
− | | [[ | + | | [[종묘]] || [[공정왕_묘호]] || [[isRelatedTo]] || || |
|- | |- | ||
|} | |} |
2022년 12월 21일 (수) 05:49 기준 최신판
목차
종묘제도의 시행 》 새로운 의미의 국가사당 영녕전
Story
종묘의 왼쪽에는 영녕전(永寧殿)이 있다. 영녕전의 건립은 정종의 부묘 때 논의되었다. 세종 3년에 공정왕이 승하하자, 부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당시 4대봉사(四代奉祀)는 천하 공통이었다. 태조는 조선의 시조이므로 불천위(不遷位)였으며, 친진(親盡)된 5대 신위는 목조였다. 태종과 세종 등은 논의 끝에, 목조의 신주를 체천(遞遷)하되, 그를 모실 별묘(別廟)를 건립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중국 남송 때 건립한 송 태조의 사조전(四祖殿)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하여 종묘의 서쪽에 별묘를 건립하였으니, 이것이 영녕전이다. 영녕전의 구조는 조실(祧室)의 넓고 좁은 것을 일체 종묘의 제도에 의거하도록 하였다. 이때 참찬 허조가 종묘의 오실이 좁아서 여러 가지로 불편한데 이 구조대로 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제기를 하였다. 세종은 그의 말을 옳다 하고 상왕에게 아뢰도록 하였으나, 태종은 태조로부터 네 임금에 전하여 내려온 이 종묘 제도를 고쳐 지을 수 없다면서, 이 제도에 의거하여 영건하도록 하였다. 그 명에 따라 예조에서는 여러 제도를 검토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 별묘는 정전 네 칸을 세우고, 동·서로 각각 협실 한 칸씩을 지으며, 그 나머지 담이나 섬돌 같은 것은 종묘와 같게 하자고 건의하였다. 따라서 최초의 영녕전은 종묘와 그 규모가 같게 건립되었다. 그 구조는 태조의 사대조를 모시는 정전 4칸과 좌우의 협실 각 1칸씩이었다. 그런데 영녕전의 사조전으로서의 기능은 성종을 종묘에 부묘할 때에 공정왕을 영녕전의 협실로 조천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영녕전은 사조전과 5대 이상의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인 조묘(祧廟)가 결합된 형태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친진되었어도 세실로 지정되면 조천하지 않았지만, 체천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신주를 왕릉 근처에 묻지 않고 영원히 영녕전에 봉안하였으니, 영녕전은 또 하나의 불천위 사당이 된 것이다. 그리고 성종 4년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서는 영녕전에서의 제사를 춘추로 맹월상순에 지내도록 규정하였다. 영녕전이 건립된 초기의 제사 규정은 별도로 제정되지 않고 세종실록 「오례」에도 실리지 않았다. 세종은 조천한 묘에는 다만 봄·가을의 대향에만 그 생뢰(牲牢)와 제품(祭品)을 종묘에 견주어 하도록 하였다가, 그 이후 사조전 양 옆의 협실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종묘보다 한 등급 낮춘 예제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note |
---|---|---|---|---|---|---|---|---|---|---|
E2022-R3-19D | Story | Episode | 새로운 의미의 국가사당 영녕전 | 새로운 의미의 국가사당 영녕전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3-19D | 2022:임민혁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E2022-R3-19D | 사조전 | isRelatedTo | ||
E2022-R3-19D | 공정왕_묘호 | isRelatedTo | ||
E2022-R3-19D | 영녕전제향 | isRelatedTo | ||
E2022-R3-19D | 세실 | isRelatedTo | ||
영녕전제향 | 영녕전 | isPerformedAt | ||
영녕전 | 불천위 | isRelatedTo | ||
영녕전 | 조선_공정왕 | isRelatedTo | ||
영녕전 | 조선_목조 | isRelatedTo | ||
영녕전제향 | 국조오례의 | isMentionedIn | ||
부묘 | 종묘 | isPerformedAt | ||
종묘 | 사대봉사 | isRelatedTo | ||
종묘 | 세실 | isPartOf | ||
영녕전 | 사조전 | isRelatedTo | ||
종묘 | 공정왕_묘호 | isRelatedTo |
Web Resour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 서울지명사전 | 거둥고개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4063198&cid=43722&categoryId=43722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id | type | bibliographic index | online resource | url |
---|
- id: 인용전거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tory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