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률사(協律社)는 1902년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의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당시 한성부 야주현(漢城府 夜珠峴:현재의 광화문 새문안교회 자리)에 있었던 황실건물 봉상사(奉常寺)의 일부를 터서 설립하였으며, 2층 500석 규모의 상설극장이다.이 극장에는 경축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기 위하여 전국의 판소리 명창(名唱)·가기(歌妓)·무동(舞童) 등 170여 명을 모아 전속단체를 만들었고, 대표는 명창 김창환(金昌煥)이 맡았다. 이들은 관급(官給)을 받으면서 연희를 연습하였으나, 그 해 여름 경축 예식이 콜레라의 만연과 영친왕(英親王)의 병 등의 이유로 간략하게 치러지자 협률사는 이후 대중적인 연희장으로 변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