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파를 기록한 물체의 진동을 진동전류로 바꾸어 확성기를 통하여 소리를 재생하는 기구. 미국의 에디슨이 1877년 구리원통에 석박을 붙이고 회전시켜 음구(音溝)를 파서 녹음하고 바늘과 진동판으로 음을 재생하였다. 우리 나라에는 1899년 3월 13일자 ≪황성신문≫에 유성기(留聲機) 판매에 관한 기사가 나온 것이 최초 기록이다.
이 해 동짓달 조정에서는 일본에서 온 기술관을 초청하여 명창 박춘재(朴春載)의 <적벽가 赤壁歌> 한 가락을 취입하고 재생하니 고종은 “춘재 네 명이 10년은 감히○구나.”하여 당시의 유성기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이 보다 앞선 1880년(고종 17) 대동강으로 들어온 프랑스신부가 평양감사에게 이를 보였으나 귀신의 소리라고 일축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1886년 충청남도 아산의 해미현감이 유태인 오페르트(Oppert,E.J.)가 타고 온 선상에서 연통식 유성기의 소리를 들었다고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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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Alva Edison사 제조. MODEL D. SERIAL NUMBER 766043. 나팔형으로 벌어진 스피커(길이 35, 너비 17.)와 원통형 실린더 레코드 받침으로 구성. 손잡이를 돌려 기계적으로 재생하는 방식. 나무로 만든 몸체의 한쪽 측면에 손잡이가 부착됨. 상단에 손잡이가 달린 뚜껑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