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영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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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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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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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글팀 표준영정 단군 표준영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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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www.kculture.or.kr/korean/portrait/portraitView.jsp?sp_seq=18 단군-선현의 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민족정보마당』<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문화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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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표준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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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標準影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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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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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정부표준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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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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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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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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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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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한국의 역사 인물 초상화 중 정부에서 표준화하여 지정한 '정부표준영정(政府標準影幀)'이다.
  
정식 명칭은 '정부표준영정(政府標準影幀)'이다.<br/>
+
==내용==
현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한국의 역사 인물 초상화 가운데서도 후대에 훌륭한 인물로 꾸준히 추앙받아온 위인들의 표준 영정을 국가에서 지정한 것이다.
+
===표준영정 지정사업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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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역사 위인들의 얼굴 가운데 상당수는 1970년대 이후에 시도된 [[표준영정 지정사업]]을 통해 그려진 것이다. 이는 충무공 [[이순신]]을 추숭하고자 했던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문화정책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73년 4월 28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윤주영]]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전국 각지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영정을 통일하고 충무공 [[이순신]] 동상 건립을 규제하는 방안을 전문가와 협의하라"<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4300020920701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4-30&officeId=00020&pageNo=7&printNo=15868&publishType=00020 忠武公(충무공)영정 統一(통일)하도록]", 『동아일보』, 작성일: 1973년 4월 30일.</ref>고 지시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으로 '영정/동상 심의 규정'이 제정되었다.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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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 1호===
현재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역사 위인들의 얼굴 가운데 상당수는 1970년대 이후에 시도된 표준영정 지정 사업을 통해 그려진 것이다. 이는 충무공 이순신을 추숭하고자 했던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문화정책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73년 4월 28일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윤주영]]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전국 각지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영정을 통일하고 충무공 이순신 동상 건립을 규제하는 방안을 전문가와 협의하라"<ref>'''전국.....협의하라'''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4300020920701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4-30&officeId=00020&pageNo=7&printNo=15868&publishType=00020 1973년 4월 30일 동아일보 "충무공 영정 관련기사"] 참조</ref>고 지시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으로 '영정/동상 심의 규정'이 제정되었다. 대통령 지시(1973.4.28)와 총리 지시(1973.5.8)에 따라 여기저기 난립해 있던 역사 위인들의 영정과 동상의 형식을 통일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국가 주도하에 그려진 초상화들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모든 정부표준영정은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으로 지정된 '영정/동상 심의 규정'에 따른 심의 절차에 따라 지정되거나 해제된다.<ref>'''모든.....해제된다''' : 영정/동상 심의 규정 (개정 2014.6.11. 문화체육관광부 훈령 234호)</ref> 이러한 당시의 상황에 따라 [[장우성]] 화가가 충무공의 영정을 그려서 아산 현충사에 봉안함으로써 표준영정 1호가 탄생하였다. 2016년 현재 총 96점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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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시(1973.4.28)와 총리 지시(1973.5.8)에 따라 여기저기 난립해 있던 역사 위인들의 영정과 동상의 형식을 통일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국가 주도하에 그려진 초상화들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모든 정부표준영정은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으로 지정된 '영정/동상 심의 규정'에 따른 심의 절차에 따라 지정되거나 해제된다.<ref>영정/동상 심의 규정 (개정 2014.6.11. 문화체육관광부 훈령 234호)</ref>
===일반적 요소===
+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장우성]] 화가가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을 그려서 [[아산 현충사]]에 봉안함으로써 표준영정 1호가 탄생하였으며, 2017년 현재 총 97점이 정부표준영정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정과정====
 
1. 동상 및 영정이 필요한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와 그 산하공공단체에서 동상이나 영정 제작을 신청한다.<br/>
 
2. 문화체육관광부 내 동상영정심의위원회가 내린 제작과 관련된 전문적인 사항에 대한 권고 및 지도안에 따라 복식사항 등을 고증해 화가가 영정을 그린다.<br/>
 
3. 화가가 그린 영정을 동상영정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하여 정부표준영정으로 지정한다.<br/>
 
4. 영정과 달리 동상의 경우 표준으로 지정하는 제도가 없다.
 
  
====지정현황====
+
===표준영정이 지닌 한계===
*2016년 12월 현재 기준.
+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 시대의 위인들은 당대에 그려진 초상화가 없을 경우 실제 외모를 온전히 재현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영정은 어디까지나 인물의 외모를 추정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난맥을 정리하고자 '편의상' 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이야기하여 표준영정은 국가적 차원에서 결의한 하나의 약속에 가까운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대가로 인정받는 화가들이 그린 영정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전해지지 않는 역사인물의 외모를 그린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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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조선시대 임금의 어진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대략 10여 종류가 남아있었는데, 1954년 [[부산 용두동 대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다. 이 때문에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현대시기에 그려진 어진의 거의 대부분이 원래 해당 임금의 외모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세종대왕 표준영정]]을 그린 [[김기창]]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바탕으로 [[조선 세종|세종대왕]]의 얼굴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볼만한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 지정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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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현명 || 작가명 || 지정연도 || 제작기관 || 소장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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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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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과 관련해서도 충무공 영정의 [[흉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형태를 화백이 임의로 그렸다는 비판이 있으며, [[황희]]의 경우는 명벽히 당대에 그려진 원본인 [[상주 옥동서원]] 소장 영정 원본이 존재하지만, 정작 표준영정은 [[진안 화산서원]]의 것이 등록되어 있다. [[유관순 표준영정|유관순 영정]]의 경우 형무소 복역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얼굴이 부은 사진을 참조해 그린 영정이 문제가 제기되면서 표준영정 지정이 해제되어 다시 새 표준영정을 제정하는 한 예가 되었다.<ref>"[https://namu.wiki/w/%ED%91%9C%EC%A4%80%EC%98%81%EC%A0%95 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나무위키』<sup>online</sup></online></html>.</ref>
| 001 || 충무공 이순신 || 월전 장우성 || 1973 || 이충무공기념사업회 || 현충사관리소(충남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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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2 || 세종대왕 || 운보 김기창 || 1973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세종대왕유적관리소(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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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생략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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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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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관계망==
*2016년 12월 현재 기준(임기:2014년 05월21일~2017년 05월20일, 총3년)
+
* '''세종대왕 표준영정의 제작과 그 논란에 관한 지식관계망'''
{| class="wikitable so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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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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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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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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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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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width:100%; text-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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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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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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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준영정]] || [[표준영정 지정사업]]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성명 || 현직 ||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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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 || 안휘준 || 한국회화사연구소장, 서울대 명예교수 || 서울대 박물관장
+
| [[표준영정]] || [[박정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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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식 || 박성실 || 한국복식학회 이사, 단국대 교수 || 문화재위원
+
| [[세종대왕 표준영정]] || [[표준영정]]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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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생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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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시사적 요소===
+
==시각자료==
====기술적 난항====
+
===동영상===
 
+
*'''MBN의 표준영정 논란 보도(게시일: 2015.09.14)'''
*전근대기의 위인들의 경우, 당대에 그려진 초상화가 없을 경우 실제 외모를 온전히 재현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영정은 어디까지나 인물의 외모를 추정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난맥을 정리하고자 '편의상' 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이야기할 경우 표준영정은 국가적 차원에서 결의한 하나의 약속에 가까운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대가로 인정받는 화가들이 그린 영정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전해지지 않는 역사인물의 외모를 그린다는 것은, 그것의 온전한 재현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시대 임금의 어진은 일제강점기를 지나서 대략 10여 종류가 잔존하였는데, 1954년 부산 용두동 대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다. 이 때문에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현대시기에 그려진 어진은 거의 대부분이 원래 해당 임금의 외모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세종대왕 표준영정]]을 그린 [[김기창]]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바탕으로 세종대왕의 얼굴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볼만한 가장 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고증과 관련해서도 충무공 영정의 흉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형태를 화백이 임의로 그렸다는 비판이 있으며, 황희의 경우는 명벽히 당대에 그려진 원본인 상주 옥동서원 소장 영정 원본이 존재하지만, 정작 표준영정은 진안 화산서원의 것이 등록되어 있다. 유관순 영정은 형무소 복역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얼굴이 부은 사진을 참조해 그린 영정이 문제가 제기되면서 표준영정 지정이 해제되어 다시 새 표준영정을 제정하는 등의 사례도 있다.<ref>'''예컨대.....사례도 있다''' : [https://namu.wiki/w/%ED%91%9C%EC%A4%80%EC%98%81%EC%A0%95 나무위키 "표준영정" 4.문제점 항목] 참조</ref>
 
 
 
====저작권 문제====
 
표준영정 지정사업이 국가를 통해 지정된 사업이라 하더라도 표준영정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나 화가들의 가족 또는 재단에게 귀속되어 있다.<br/>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역사인물의 초상을 국가적 차원에서 공공으로 유통하기 위해 제작된 표준영정들이 저작권 문제에 걸려 자유롭게 활용되지 못한 사례들이 많은 상황이다.
 
 
 
=='''멀티미디어 자료'''==
 
<big>'''*MBN의 표준영정 논란 보도(2015.09.14)'''</big>
 
 
 
 
<html>
 
<html>
 
<iframe width="640" height="360" src="https://www.youtube.com/embed/ry16hdGNPuw"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iframe width="640" height="360" src="https://www.youtube.com/embed/ry16hdGNPuw"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html>
 
</html>
  
=='''관련정보'''==
+
==주석==
 
 
===한글고문헌_전시자료===
 
*'''[[세종대왕_표준영정]]'''은 표준영정 가운데 하나이다.
 
 
 
===작가===
 
*'''[[김기창]]'''은 대표적 표준영정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이종상]]'''은 대표적 표준영정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인물===
 
*표준영정 지정사업은 '''[[박정희]]'''에 의해 시작되었다.
 
 
 
=='''각주'''==
 
 
<references/>
 
<references/>
  
=='''참고문헌'''==
+
==참고문헌==
==='''온라인 문헌'''===
+
===더 읽을 거리===
====● 전문기관 저작물====
+
# 논문
*'''[http://www.kculture.or.kr/korean/portrait/portraitAbout.jsp 한민족 정보마당 "선현의 표준영정"]'''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음 (2016년 12월 27일 확인.)
+
#*조은정,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86128060&dir_id=0&page=0&query=%ED%91%9C%EC%A4%80%EC%98%81%EC%A0%95%EC%97%90%20%EB%8C%80%ED%95%9C%20%EC%97%B0%EA%B5%AC&ndsCategoryId=10122&library=117「표준영정에 대한 연구 : 공동체 의식과 감정통합의 균일화 과정」], 『로컬리티 인문학 제15호』, 부산대학교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6.
 
+
# 기사
====● 공공이용 저작물====
+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4300020920701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4-30&officeId=00020&pageNo=7&printNo=15868&publishType=00020 忠武公(충무공)영정 統一(통일)하도록]", 『동아일보』, 작성일: 1973년 4월 30일.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C%A0%95%EB%B6%80%ED%91%9C%EC%A4%80%EC%98%81%EC%A0%95 위키백과 "대한민국의 정부표준영정"]'''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음 (2016년 12월 27일 확인.)
+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254743 표준영정 최다 보유자 장우성 화백]", 『경남신문』, 작성일: 2000년 7월 4일.
*'''[https://namu.wiki/w/%ED%91%9C%EC%A4%80%EC%98%81%EC%A0%95 나무위키 "표준영정"]'''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음 (2016년 12월 27일 확인.)
+
#*"[http://news.joins.com/article/10199499 어진없어 상상으로 그린 세종대왕, 표준은 뭘까]", 『중앙일보』, 작성일: 2012년 12월 18일.
 
 
====● 보도방송 저작물====
 
*'''[http://news.joins.com/article/10199499 <중앙일보> 기사 "어진없어 상상으로 그린 세종대왕, 표준은 뭘까(2012년 12월 18일)"]'''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음 (2016년 12월 27일 확인.)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254743 <경남신문> 기사 "표준영정 최다 보유자 장우성 화백(2000년 07월 04일)"]'''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음 (2016년 12월 27일 확인.)
 
  
==='''오프라인 문헌'''===
+
===유용한 정보===
====● 학술논문====
+
*"[http://www.kculture.or.kr/korean/portrait/portraitAbout.jsp 선현의 표준영정 소개]", 선현의 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민족 정보마당』<sup>online</sup></online></html>.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86128060&dir_id=0&page=0&query=%ED%91%9C%EC%A4%80%EC%98%81%EC%A0%95%EC%97%90%20%EB%8C%80%ED%95%9C%20%EC%97%B0%EA%B5%AC&ndsCategoryId=10122&library=117 조은정, '표준영정에 대한 연구 : 공동체 의식과 감정통합의 균일화 과정' <로컬리티 인문학 제15호>, 부산대학교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6.]
+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C%A0%95%EB%B6%80%ED%91%9C%EC%A4%80%EC%98%81%EC%A0%95 대한민국의 정부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위키백과』<sup>online</sup></online></html>.
====● 신문기사====
+
*"[https://namu.wiki/w/%ED%91%9C%EC%A4%80%EC%98%81%EC%A0%95 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나무위키』<sup>online</sup></online></html>.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4300020920701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4-30&officeId=00020&pageNo=7&printNo=15868&publishType=00020 1973년 4월 30일 동아일보 "충무공 영정 관련기사"]
 
  
[[분류:민족기록화]]
+
[[분류:한글고문서]][[분류:개념]][[분류:류인태]]
[[분류:한글고문서_개념기사]]
 

2017년 11월 22일 (수) 21:48 기준 최신판

표준영정
(標準影幀)
"단군-선현의 표준영정", 『한민족정보마당』online, 한국문화정보원.
대표명칭 표준영정
한자표기 標準影幀
이칭 정부표준영정


정의

현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한국의 역사 인물 초상화 중 정부에서 표준화하여 지정한 '정부표준영정(政府標準影幀)'이다.

내용

표준영정 지정사업 지시

현재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역사 위인들의 얼굴 가운데 상당수는 1970년대 이후에 시도된 표준영정 지정사업을 통해 그려진 것이다. 이는 충무공 이순신을 추숭하고자 했던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문화정책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73년 4월 28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윤주영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전국 각지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영정을 통일하고 충무공 이순신 동상 건립을 규제하는 방안을 전문가와 협의하라"[1]고 지시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으로 '영정/동상 심의 규정'이 제정되었다.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 1호

대통령 지시(1973.4.28)와 총리 지시(1973.5.8)에 따라 여기저기 난립해 있던 역사 위인들의 영정과 동상의 형식을 통일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국가 주도하에 그려진 초상화들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모든 정부표준영정은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으로 지정된 '영정/동상 심의 규정'에 따른 심의 절차에 따라 지정되거나 해제된다.[2]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장우성 화가가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을 그려서 아산 현충사에 봉안함으로써 표준영정 1호가 탄생하였으며, 2017년 현재 총 97점이 정부표준영정으로 지정되어 있다.

표준영정이 지닌 한계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 시대의 위인들은 당대에 그려진 초상화가 없을 경우 실제 외모를 온전히 재현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영정은 어디까지나 인물의 외모를 추정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난맥을 정리하고자 '편의상' 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이야기하여 표준영정은 국가적 차원에서 결의한 하나의 약속에 가까운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대가로 인정받는 화가들이 그린 영정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전해지지 않는 역사인물의 외모를 그린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시대 임금의 어진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대략 10여 종류가 남아있었는데, 1954년 부산 용두동 대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다. 이 때문에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현대시기에 그려진 어진의 거의 대부분이 원래 해당 임금의 외모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세종대왕 표준영정을 그린 김기창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바탕으로 세종대왕의 얼굴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볼만한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고증 문제

고증과 관련해서도 충무공 영정의 흉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형태를 화백이 임의로 그렸다는 비판이 있으며, 황희의 경우는 명벽히 당대에 그려진 원본인 상주 옥동서원 소장 영정 원본이 존재하지만, 정작 표준영정은 진안 화산서원의 것이 등록되어 있다. 유관순 영정의 경우 형무소 복역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얼굴이 부은 사진을 참조해 그린 영정이 문제가 제기되면서 표준영정 지정이 해제되어 다시 새 표준영정을 제정하는 한 예가 되었다.[3]

지식관계망

  • 세종대왕 표준영정의 제작과 그 논란에 관한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표준영정 표준영정 지정사업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표준영정 박정희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세종대왕 표준영정 표준영정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시각자료

동영상

  • MBN의 표준영정 논란 보도(게시일: 2015.09.14)

주석

  1. "忠武公(충무공)영정 統一(통일)하도록", 『동아일보』, 작성일: 1973년 4월 30일.
  2. 영정/동상 심의 규정 (개정 2014.6.11. 문화체육관광부 훈령 234호)
  3. "표준영정", 『나무위키』online.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1. 논문
  2. 기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