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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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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祖師)나 고승대덕(高僧大德)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영정(影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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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祖師)나 고승대덕(高僧大德)의 초상을 그린 것이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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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진영 혹은 영정이라고 하는 것은 인물화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의 용모를 그린 회화를 뜻하지만 불교미술에서는 승상(僧像)을 그린 것만을 뜻하게 된다. 고승 진영에는 그림 한쪽에 주인공의 인격이나 덕망에 대해 그것을 기리고 추모하는 글을 지어 써 넣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찬문(讚文)이라고 한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25670&cid=50826&categoryId=50826 진영]", 문화원형 용어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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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진영 혹은 영정(影幀)은 인물화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의 용모를 그린 회화를 뜻한다. 불교미술에서는 승상(僧像)을 그린 것만을 뜻하게 된다. 고승 진영에는 그림 한쪽에 주인공의 인격이나 덕망에 대해 그것을 기리고 추모하는 글을 지어 써 넣기도 하는데 그것을 찬문(讚文)이라고 한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25670&cid=50826&categoryId=50826 진영]", 문화원형 용어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ref>
  
한국의 진영은 인물화·불화를 망라하여 본래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주 드물고, 대개는 후세에 그에 대해 전하는 모습과 인품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오면 이재(李縡) 초상의 예에서처럼 사실적인 진영 제작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고대 불교에서는 본래 성인은 그릴 수 없다 하여 진영 제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일 종파가 성립되고,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선종이 발달하여 사자상전(師資相傳)의 법문이 확립되면서 각 [[구산선문|선문(禪門)]]이 그 법문의 개산조를 숭앙하게 되자 그 방편으로 진영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89277&cid=40942&categoryId=33050 진영]",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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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영은 인물화·불화를 망라하여 본래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주 드물고, 대개는 후세에 그에 대해 전하는 모습과 인품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오면 이재(李縡) 초상의 예에서처럼 사실적인 진영 제작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고대 불교에서는 본래 성인은 그릴 수 없다 하여 진영 제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일 종파가 성립되고,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선종이 발달하여 사자상전(師資相傳)의 법문이 확립되면서 각 [[구산선문|선문(禪門)]]이 그 법문의 개산조를 숭앙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진영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89277&cid=40942&categoryId=33050 진영]",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하동 쌍계사의 진감선사비명(眞鑑禪師碑銘)]]이나 시문(詩文)을 통해 보면 한국에서 고승의 진영은 이미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인물의 진영으로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호림박물관]]의 [[원효 진영|원효]]·[[의상 진영|의상조사 진영]]과 [[하동 쌍계사|쌍계사]]의 [[혜소 진영|진감선사 진영]], [[구례 화엄사]]의 연기조사(緣起祖師) 진영, [[순천 선암사|순천 선암사]]의 도선국사 진영 등이 있다. 고려시대 고승을 그린 것으로는 [[순천 선암사|선암사]]의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대각국사 의천 진영]], [[대구 동화사]]의 [[지눌 진영(동화사)|보조국사 지눌 진영]], [[영천 은해사|은해사(銀海寺)]] 백흥암의 홍진(弘眞) 진영, [[순천 송광사]]의 16국사 진영 등이 유명하다. 특히 [[순천 송광사 국사전|송광사 국사전]]의 16국사 진영은 규격이나 제작 기법이 동일하여 같은 시대 같은 인물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뛰어난 작품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진영 제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물·자세 등에서 거의 일정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영정이 제작되어 조사당·국사전 등에 봉안되었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89277&cid=40942&categoryId=33050 진영]",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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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하동 쌍계사의 진감선사비명(眞鑑禪師碑銘)]]이나 시문(詩文)을 통해 보면 한국에서 고승의 진영은 이미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인물의 진영으로 현재까지 전하는 것으로 [[호림박물관]]의 [[원효 진영|원효]]·[[의상 진영|의상조사 진영]]과 [[하동 쌍계사|쌍계사]]의 [[혜소 진영|진감선사 진영]], [[구례 화엄사]]의 연기조사(緣起祖師) 진영, [[순천 선암사|순천 선암사]]의 도선국사 진영 등이 있다. 고려시대 고승을 그린 것으로는 [[순천 선암사|선암사]]의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대각국사 의천 진영]], [[대구 동화사]]의 [[지눌 진영(동화사)|보조국사 지눌 진영]], [[영천 은해사|은해사(銀海寺)]] 백흥암의 홍진(弘眞) 진영, [[순천 송광사]]의 16국사 진영 등이 유명하다. 특히 [[순천 송광사 국사전|송광사 국사전]]의 16국사 진영은 규격이나 제작 기법이 동일하여 같은 시대 같은 인물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뛰어난 작품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진영 제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물·자세 등에서 거의 일정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영정이 제작되어 조사당·국사전 등에 봉안되었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89277&cid=40942&categoryId=33050 진영]",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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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4일 (일) 23:52 기준 최신판

진영
(眞影)
대표명칭 진영
한자표기 眞影
영문명칭 Portrait
유형 초상화
관련개념 진영, 어진



정의

조사(祖師)나 고승대덕(高僧大德)의 초상을 그린 것이다.

내용

일반적으로 진영 혹은 영정(影幀)은 인물화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의 용모를 그린 회화를 뜻한다. 불교미술에서는 승상(僧像)을 그린 것만을 뜻하게 된다. 고승 진영에는 그림 한쪽에 주인공의 인격이나 덕망에 대해 그것을 기리고 추모하는 글을 지어 써 넣기도 하는데 그것을 찬문(讚文)이라고 한다.[1]

한국의 진영은 인물화·불화를 망라하여 본래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주 드물고, 대개는 후세에 그에 대해 전하는 모습과 인품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오면 이재(李縡) 초상의 예에서처럼 사실적인 진영 제작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고대 불교에서는 본래 성인은 그릴 수 없다 하여 진영 제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일 종파가 성립되고,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선종이 발달하여 사자상전(師資相傳)의 법문이 확립되면서 각 선문(禪門)이 그 법문의 개산조를 숭앙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진영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2]

하동 쌍계사의 진감선사비명(眞鑑禪師碑銘)이나 시문(詩文)을 통해 보면 한국에서 고승의 진영은 이미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인물의 진영으로 현재까지 전하는 것으로 호림박물관원효·의상조사 진영쌍계사진감선사 진영, 구례 화엄사의 연기조사(緣起祖師) 진영, 순천 선암사의 도선국사 진영 등이 있다. 고려시대 고승을 그린 것으로는 선암사대각국사 의천 진영, 대구 동화사보조국사 지눌 진영, 은해사(銀海寺) 백흥암의 홍진(弘眞) 진영, 순천 송광사의 16국사 진영 등이 유명하다. 특히 송광사 국사전의 16국사 진영은 규격이나 제작 기법이 동일하여 같은 시대 같은 인물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뛰어난 작품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진영 제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물·자세 등에서 거의 일정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영정이 제작되어 조사당·국사전 등에 봉안되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의천 진영(선암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나옹 진영(통도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나옹 진영(대곡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나옹 진영(신륵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무학 진영(통도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무학 진영(신륵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지눌 진영(송광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지눌 진영(동화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여주 신륵사 조사당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역사인물초상화관 문맥기사목록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황희 초상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유정 진영(동화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유정 진영(대곡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유정 진영(압곡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유정 진영(월정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휴정 진영(대곡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휴정 진영(국립중앙박물관1)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휴정 진영(국립중앙박물관2)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초상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원효 진영(고잔지)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원효 진영(범어사)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세조대왕 진영 진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공간정보

시각자료

주석

  1. "진영", 문화원형 용어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2. "진영",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진영",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진영", 문화원형 용어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