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원일기(鼠生員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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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seo21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4년 3월 23일 (토) 05: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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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원일기(鼠生員日記)

작고(作故) 가수 김정구가 구성지게 열창(熱唱)했던 노래 ‘서생원일기(鼠生員日記)’를 경자년(庚子年) 새해 아침에 다시 듣고 있다.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으로 1942년에 취입한 대중가요다.

<어제는 경기 개명 찾아갔건만

오늘은 낙동강에 떨어진 선비

알성급제 푸른 꿈은 어데로 가고

한양에서 허탕길 고향가는 서생원

행화촌 저문 날에 노새는 운다

아가씨 선물 받은 쌈지도 운다

견마잽이 하인들은 어데로가고

병풍에 꽃잎만이 가는 길을 막는고

주막집 호롱불도 서러울게요

성주님 보기에도 무안할게요

글방 공부 십년 공부 어데로 가고

헛타방 치고 가나 가엾어라 서생원>

과거시험에 낙방(落榜)하고 고향 찾아가는 서생원의 처량하고 초라한 행색(行色)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낙방 선비의 절망과 좌절이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오늘의 수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실망과 허기진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때의 서생원과 오늘의 서생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도 생각해 보게 한다. 일제 식민치하에서 신음하는 조선 민중들의 고통과 서러움을 호소하는 저항의 몸부림을 김정구는 노래로 분출해 냈을 것이다. 그는 또 민족혼을 흔들어 일깨우기 위해 특유의 구슬픈 목소리로 하소연했을 것이다. 그 모습이 활동사진처럼 지나가고 있다.

해가 바뀌면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 덕담(德談)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 우리네 세시풍습(歲時風習)이고 미풍양속(美風良俗)이다. 덕담의 소재는 돌아온 새해가 12지지(地支) 가운데 어느 동물에 해당되는가에 따라 주고받는 격려와 칭찬의 내용도 달라진다. 이를테면 소띠해에는 근면성실을 말하고, 닭띠해에는 새벽이 열리는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말띠해에는 박차고 뛰어오르는 힘찬 기상, 양띠해에는 부드럽고 온순함, 용띠해에는 승천(昇天)하는 용꿈을 꾸라며 격려해 준다.

그럼 쥐띠해는 무슨 말로 덕담을 나누어야 할까? 쥐는 흔히들 풍요로우며 미래를 예상하는 영리함이 있다고들 한다. 쥐는 사람 주변에서 서식하는 포유동물로 농작물을 먹어치우거나 각종 질병의 매개역할도 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각종 질병 퇴치를 위한 신약(新藥) 개발에 실험용으로 희생되면서 인간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양면성을 가지고도 있다. 쥐의 특성은 은밀성(隱蜜性)과 왜소성(倭少性), 다산성(多産性)에 있다. 쉴 새 없이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부지런함과 다산(多産)의 왕성한 번식력이다, 몸집은 왜소하지만 민첩하게 운신(運身)하며 고양이, 올빼미, 족제비, 뱀 같은 천적으로부터 자기보호에 뛰어난 방어력을 가지고도 있다.

 쥐는 ‘미키마우스’, ‘톰과 제리’, ‘콩쥐팥쥐’와 같이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 주는 우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12지지(地支) 동물 가운데 쥐를 의인화(擬人化)시켜 사람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쥐에 대한 대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금수회의록’에서는 쥐를 ‘서생원(鼠生員)’이라 부른다. 서생원은 쥐를 의인화하여 속되게 부르는 별칭이지만 생원(生員)은 조선시대에서는 진사(進士)와 더불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기도 했다. 쥐가 벼슬하는 초급관리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쥐는 10개의 천관(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가 어울린 60갑자(甲子)에서 제일 앞자리에 앉는다. 쥐가 어떻게 해서 12동물 가운데 맨 앞자리를 차지했는가에 대해서는 음양오행과 역학(易學)적 설명이 필요하다. 그만큼 영리하고 약삭빠르며 귀엽고 잽싼 그의 동물적 특성이 작용한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그래서 60갑자를 설정할 때 쥐에 대해서는 쥐 서(鼠) 자를 쓰지 않고 아들 자(子)를 썼다는 것이다. 사람의 출생연도에 따른 띠를 말할 때는 쥐를 자(子)로 예우한다는 것이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쥐가 제아무리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설쳐대도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강하다. 쥐의 슬픈 운명이다. 한때는 사회 캠페인으로 쥐잡기 박멸 운동이 전개된 적도 있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고 했다. 태산이 떠나 갈듯이 요란하게 떠들더니 튀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이었다는 뜻이다. 예고만 떠들썩하고 실제 결과는 별것 아니라는 비유적 표현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도 있다. 말은 언제나 새어나가기 마련이니 말조심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쥐는 남의 말이나 엿듣는 얌체 동물이라는 경계의 의미도 내포돼 있다. ‘고양이 앞의 쥐’라는 말은 강자 앞에서는 발발 떠는 약자의 비굴한 몸가짐을 빗대어 부르는 표현이다. 12지지를 선택할 때 고양이는 모르고 있다가 쥐가 1등 자리를 차지한 데 대한 앙갚음으로 고양이는 쥐만 보면 잡아 족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쥐새끼 같은 놈’이란 비속어도 있다. 의리를 저버리고 배신하거나 자기 자신만의 사리사욕만 채우는 이기적 인간을 낮추어 욕하는 경우이다. ‘쥐뿔도 모른다’는 소리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