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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원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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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9월 22일 (금) 14:42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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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원사지
(密陽 瑩源寺址)
대표명칭 밀양 영원사지
한자 密陽 瑩源寺址
경내문화재 밀양 영원사지 보감국사 부도, 밀양 영원사지 보감국사묘응탑비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었던 영원사(瑩源寺)의 절터.

내용

고려국 천태 불은사 중흥기(高麗國 天台 佛恩寺 重興記)』에 따르면 의선은 1323년부터 영원사 주지를 하고 있는 동안 원나라에 들어가 1336년 귀국할 때까지 법호에 영원사 주지라는 말이 따라 다녔다. 또 영원사를 ‘연이기사위전대국통하산소(然以其寺爲前代國統下山所)’라고 표현한 것을 볼 때 고려시대 때 교권을 장악하는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지방사원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선종(禪宗)에 몸담고 있었던 탄연(坦然)광명사(廣明寺)로 옮긴 뒤 영원사의 주지는 천태종 스님인 원각국사 덕소(圓覺國師 德素, 1108-1174)가 맡게 된다. 이 때 선종 사찰인 영원사천태종(天台宗) 사찰로 바뀌었다.

「국청사금당주불석가여래사리영이기(國淸寺金堂主佛釋迦如來舍利靈異記)」에는 천태종 백련사(白蓮寺) 출신인 무외국통 정오(無畏國統 丁午, ?-1318)충선왕의 명에 따라 1310년 영원사에 주석하면서 금당(金堂)과 낭무(廊廡)를 중수했다.

정오는 1313년 11월 충숙왕으로부터 국통(國統)의 직위를 받아 당시의 교계를 통솔하다 1314년 영원사를 떠났다. 이후 일연(一然)의 제자인 보감국사 혼구(寶鑑國師 混丘, 1250-1322)영원사에 주석하면서 선종 사찰로 복구되었다.

영원사의 정확한 폐사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밀주지에 “비석은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다. 절을 폐한 그 터에다 덕성서원(德城書院)을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1567년(명종 22)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로선 영원사지의 규모 또한 알 수 없다. 다만 남아있는 유물과 역사사료를 참고할 때 사세가 컸음을 짐작할 뿐이다. 남아있는 유물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호 보감국사부도(寶鑑國師浮屠)와 13호 보감국사묘응탑비(寶鑑國師妙應塔碑), 불상 4구, 광배, 주춧돌, 기와 파편 등이 전부다.[금강신문]

혜근과 밀양 영원사에 얽힌 이야기

나옹선사 혜근(懶翁禪師 惠勤)공민왕의 총애로 고려말 불교계 중심 인물로 살았다. 하지만 공민왕 사후에 왕위에 오른 우왕은 그를 내쳤다. 우왕은 재위 2년째인 1376년 혜근에게 밀양 영원사로 갈 것을 명했고, 영원사로 가던 혜근여주 신륵사(驪州 神勒寺)에서 열반했다. 불과 57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그의 제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조선건국과 함께 왕사(王師)로 책봉돼 혜근의 불교를 이어갔지만, 혜근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비운이었다. [전북일보]

관련 문화재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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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