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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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척(洪陟) | |
대표명칭 | 홍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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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陟 |
생몰년 | 미상-미상 |
시호 | 증각(證覺) |
호 | 홍직(洪直) |
법호 | 난원(爛圓) |
탑호 | 응료(凝寥) |
이칭 | 실상화상(實相和尙), 남한조사(南韓祖師) |
승탑 |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 |
승탑비 |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 |
정의
신라시대의 승려
내용
홍척(洪陟)은 실상산문(實相山門)의 개산조로, 당 나라에 가서 마조(馬祖)의 제자인 서당 지장(西堂智藏, 735-814)의 선법(禪法)을 전해 받고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하여 지리산에 실상사(實相寺)를 창건하고 선풍(禪風)을 일으켰다.[1]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碑)의 비문에서 "북산(北山)에는 도의(道義)요 남악에서는 홍척"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한 홍척보다 5년 앞서 821년(헌덕왕 13)에 귀국한 도의는 설악산을 근거로 하여 신라의 북방에서 선법을 펴고 있었고, 홍척은 남쪽인 지리산에 자리잡고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2]
또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1에 홍척의 법통을 이은 이로 흥덕대왕과 선강태자(宣康太子)가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왕족의 귀의를 받아 선풍을 크게 드날렸음을 알 수 있다. 문하에 수철(秀澈)이 있어 실상산문을 크게 일으켰다.[3]
시호는 증각(證覺), 탑명은 응료(凝寥)이다. 탑과 비는 실상사에 있으며, 각각 보물 제38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과 보물 제39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으로 지정되었다.[4] 탑비는 비신(碑身)이 결실되어 전해지지 않으므로, 홍척의 구체적인 행적을 알 수가 없다.
시각자료
갤러리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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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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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홍척",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영길, "홍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영길, "홍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강정만, "홍척",
『디지털남원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