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관 개관

김태-동령부 우라산성의 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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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김지선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4월 4일 (화) 22:37 판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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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령부 오라산성의 공함
김태-오라산성함락(이성계)-1975s.jpg
작가 김태
제작연도 1975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전쟁
분류 유화
소장처 전쟁기념관


개요

고려 공민왕이 원·명 교체기의 공백상태를 이용하여 고려의 전통적인 북진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동녕부정벌을 일으켰는데, 해당 작품은 그 일환으로, 1370년 1월에 이성계 지휘하의 고려군이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동녕부 우라산성(于羅山城)을 함락시키는 장면을 재현하였다.
이 작품은 정확한 인체묘사와 인물들의 표정, 의상과 배경에 대한 작가의 세심한 배려 등이 돋보이는 수작들 가운데 하나이다.[1]

설명

작품 소재

작품 왼편에서 백마를 탄 흰색 갑옷의 장군이 이성계이고, 오른편에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이 동녕부 동지(東寧府同知) 이오로첩목아(李吾魯帖木兒)이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이오로첩목아(李吾魯帖木兒)가, 태조가 온다는 말을 듣고서 우라산성(亐羅山城)으로 옮겨 보전하여 험준한 곳에 웅거해 막으려고 하였는데, 태조가 야돈촌(也頓村)에 이르자, 이오로첩목아가 와서 도전(挑戰)하다가 잠시 후에 갑옷을 버리고 재배(再拜)하며 말하기를,
"나의 선조(先祖)는 본래 고려 사람입니다. 신복(臣僕)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고는, 3백여 호(戶)를 거느리고 항복하였다...[2]

해당 작품은 위와 같은 장면을 담고 있다.

작품 배경

작품의 배경인 오녀산성오녀산의 북쪽과 동쪽에 연결되어 있는 높고 낮은 여러 산봉우리 가운데서 가장 높고 험한 800m의 산마루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축조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작품의 오른편에 그려진 오녀산성과 작품 뒤쪽에 배치된 높고 낮은 산봉우리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품 구도

해당 작품은 승자와 패자의 극명한 대립, 즉 대각선으로 나뉘는 화면 상단과 하단이라는 위치선정, 아래를 내려다보고 위를 올려다보는 시선의 대립, 기세등등한 포즈와 무릎을 꿇은 굴욕적인 포즈의 대립, 완전한 정면상은 아닐지라도 정면을 보여주고 있는 아군과 등을 보이고 있는 적군이라는 전통적인, 또는 도식화된 이분법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승리라는 메시지를 일차원적으로 전달할 따름이다.[3]

시각적 안내

김태-오라산성함락(이성계)-1975s.jpg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태 김태-동령부 우라산성의 공함 A는 B를 그렸다 1975년
김태-동령부 우라산성의 공함 이성계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김태-동령부 우라산성의 공함 동녕부정벌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김태-동령부 우라산성의 공함 오녀산성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이성계 동녕부정벌 A는 B를 지휘하였다
이성계 오녀산성 A는 B를 공격하였다 1370년 1월
이성계 이오로첩목아(李吾魯帖木兒) A는 B와 대립하였다 1370년 1월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5년 김태가 김태-동령부 우라산성의 공함를 제작하였다.
1991년 1월 8일-1992년 1월 7일 국회사무처가 김태-동령부 우라산성의 공함를 대여하였다.
1370년 1월 이성계오녀산성을 공격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32103 126.914133 김태-동령부 우라산성의 공함이 국회사무처에 대여되었다.
37.532103 126.914133 김태-동령부 우라산성의 공함이 전쟁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래프

참고문헌

  • "동녕부정벌, 『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online, 두산백과. 2017년 04월 04일 확인
  • "환인오녀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04일.

주석

  1.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년, 92쪽.
  2. "태조실록 1권, 총서 47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온라인 서비스』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최종확인: 2017년 04월 04일.
  3.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년, 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