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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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영(粲英)() | |
대표명칭 | 찬영(粲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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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anyeong |
생몰년 | 1328(충숙왕 15)-1390(공양왕 2) |
시호 | 대지국사(大智國師) |
호 | 목암(木菴) |
휘 | 찬영(粲英) |
탑호 | 지감원명(智鑑圓明) |
자 | 고저(古樗) |
성씨 | 한씨(韓氏) |
본관 | 양주(楊州) |
승탑비 |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忠州 億政寺址 大智國師塔碑) |
정의
고려시대의 승려
생애
가계와 탄생
성은 한씨(韓氏). 자는 고저(古樗), 호는 목암(木菴). 경기도 양주 출신. 아버지는 사복시직장(司僕寺直長) 적(績)이며, 어머니는 청주곽씨(淸州郭氏)이다.[1]
스님의 휘는 찬영(粲英)이고 字는 고저(古樗)이며, 호는 목암(木菴)이다. 속성은 한씨(韓氏)이며 아버지의 휘(諱)는 적(績)이니 양주(楊州) 사람으로 사복직장(司僕直長)[2]을 역임하였고, 어머니는 곽씨(郭氏)이니, 청주(淸州) 출신으로 선관서승(膳官署丞)[3]인 영번(永潘)의 딸이다. 태정(泰定) 무진년(戊辰年, 1328) 1월 8일에 탄생하였다. | ||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0-11쪽. |
출가수행
찬영 스님은 14세(1341년)에 삼각산 중흥사로 출가하여 원증국사 태고 의 제자가 되었다. 5년 후 정혜국사를 친견하고, 장흥 보림사의 제 2좌(座)가 되었다. 유점사(楡岾寺) 수자화상(守慈和尙)을 친견하고 그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다.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 ||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
찬영스님은 22세의 나이에 승과시험에 상상과로 합격하고, 3년후 25세 때는 전국의 교종과 선종의 모든 스님을 모아 각기 스스로 얻은 바의 견해를 시험한 시험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이미 승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두각을 나타낸 찬영을 두고 당시 고승 국일지엄존자(國一智嚴尊者)가 찬영이 왕사가 될 것이라 예언 하였다.
경인년(庚寅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승과고시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하였고, 계사년(癸巳年)에는 또 공부선과(功夫選科)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그 당시 국일지엄존자(國一智嚴尊者)가 스님의 관상을 보고 이르기를 "이 사람은 반드시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 ||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2쪽. |
활동
찬영스님과 공민왕의 깊은 인연.
찬영은 우왕 9년에 왕사로 책봉되었다. 우왕 이후 창왕도 찬영스님을 계속해서 왕사로 맞이하였다. 공양왕 또한 즉위하자 찬영을 국사로 맞이하려 하였으나, 당시 대간으로부터 이단인 불교인을 국사로 모시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는 상소가 있는 것을 알고, 찬영은 국사직을 강력히 거절하게 된다.
입적
찬영스님은 1390년 6월 28일에 입적한다. 세수는 63세, 법랍은 49하(夏)[4]이다. 입적하기 전에 불교의 교리를 담은 내용인 게송(偈頌)을 통해 주변에 모인 문인들에게 스스로 생각한 불교관을 설명한다.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 찬영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1393년 |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 충주 억정사지 | A는 B에 있다 | 1 |
보우 | 찬영 | A는 B의 스승이다 | |
찬영 | 공민왕 | A는 B와 관련있다 | |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 박의중(朴宜中) |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 |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 선진 | A는 B가 비문을 썼다 | |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 혜공 | A는 B가 비문을 새겼다 |
참고문헌
-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2-27쪽.
각주
- ↑ 민백
- ↑ 사복(司僕)은 사복시(司僕寺)로서 고려와 조선 시대에 궁중의 수레, 마필, 목장 등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고려말의 직장(直長)은 종 7품이다.
- ↑ 선관서는 고려시대에 제사와 연회에 쓰이는 음식을 맡아보던 관서이다.
- ↑ 법랍은 불가에서 속인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해부터 세는 나이 이다. 법랍을 세는 단위가 하 인 것은 하안거(夏安居) 제도에 따라 안거를 마친 횟수대로 나이를 세게 된다. "법랍",
『두산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