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 '정약용과 저술'을 통해 본 정약용의 삶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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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4월 28일 (금) 23:0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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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정창섭 화백의 정창섭-정약용과 저술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다산초당에 머물면서 사색과 저술에 몰두하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초당 마당에서 사색하고 있는 정약용의 모습을 실마리로 삼아, 그의 저작, 교유하였던 인물, 행적을 남긴 장소 등으로 시야를 넓혀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정약용의 삶의 세계를 조망해 본다.

내용

1801년(순조 1년)의 신유박해 때 유배 형을 받은 다산은 18년간의 강진 유배생활 가운데 11년 동안(1808~1818) 다산초당에 기거하였다. 그 기간 동안 육경사서(六經四書)의 주석을 비롯하여 그 시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연구와 저술에 집중한 정약용은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정약용의 많은 저술 가운데 유배 만년에 저술한 이른바 일표이서(一表二書,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통해서 실학자로서의 다산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 또한 백운동 별서정원의 아름다움을 시로 담아낸 백운첩을 통해서는 문인으로서의 다산을, 그리고 부인 홍혜완의 빛바랜 치마폭을 잘라 만든 매화병제도하피첩을 통해 아버지로서의 다산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강진 지역에 남은 정약용의 공간적 자취는 다산초당에 머물지 않는다. 인근의 백련사에서는 다산과 혜장선사의 우정을, 백운동 별서정원에서는 다산과 원주이씨가의 인연을 살필 수 있다. 강진의 명소가 된 녹차밭 설록다원 강진에서도 정약용의 호 '다산(茶山)'이 지닌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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