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석(장로)
서원석 장로(대한성서공회 본부장)
목차
가족
시조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부총리)
2세 서필(徐弼 내의령(內議省).종 1품.국무총리)
3세 서희(徐熙 내사령(內史令).종 1품.국무총리)
한국 최초의 유아 세례자 서병호 장로
서병호 장로님의 새문안 교회 안에서의 영향력이 매우 컷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60년 경신 학교의 교장직을 끝으로 공직에서는 은퇴했지만, 한국 교회 최초의 유아 세례자로서 이모저모로 교계의 일을 섬겼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 명인 서경조 목사의 차남으로 1919년 김규식, 여운형, 장덕수 등과 신한청년당을 조직했고 상해 임시 정부의 내무위원으로서 독립 운동의 현장에서 뛰었던 독립 유공자입니다. 그가 장로로 섬겼던 새문안 교회는 1886년 5월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로서 선친 서경조 목사가 한국 목사로서 처음으로 대를 이었습니다.
실제 서경조 목사의 형인 서상륜은 만주에서 우리나라 성경을 최초로 번역해서 전도자의 역할을 했으며 증손자인 서원석 장로가 대를 이어서 현재 대한 성서공회 본부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서병호 장로는 교회의 장로, 독립 운동가, 교육가로서 분주한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사회적인 기득권을 자랑할 만도 하지만 이상과 실천을 위한 몸부림 때문에 자기 신변의 구체적인 일들은 항시 뒤로 미루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난항을 거듭하던 1922년, 독립 지사들이 국민 대표회를 개최했을 때 그는 준비 위원회의 심부름꾼을 자임했습니다. 또한 6.25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서도 여전히 동분서주했습니다.
피난지 부산에서 기독 청년 연맹의 출범과 전시대책 위원장의 소임을 감당하면서 음지에서 숨은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특별히 맹인협회, 농아자협회 이사장으로서 장애자들을 위한 섬김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평소에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나라가 있으므로 나라와 나의 관계를 절실히 깨달은 국민이 되자’ 라고 많은 사람들을 계몽, 설득했습니다.
서병호 장로는 평생 두 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첫째는 새문안 교회의 장로직 입니다. 예배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항상 2시간 전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와의 섬김의 관계를 가장 중요한 영적인 축복으로 믿고 교회와 목회자를 먼저 생각하며 말씀으로 살았습니다.
둘째는 경신학교와의 관계입니다. 그의 모교였으며 교사, 교장, 이사장으로 섬겼습니다. 교육의 소중성을 일찍이 간파한 선구자였습니다
서병호 장로는 시대를 읽으며 시대의 책임자로 살았던 크리스찬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책임적 존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또한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1972년 새문안 교회의 허봉락 장로와 함께 전국 장로 연합회를 발족 시켰습니다.
사실 서병호 장로의 가계는 한국 교회 역사의 족보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정입니다. 서상륜 권서(한국 최초의 성서 번역자), 서경조 목사(최초의 7인 목사중 한 명), 서병호 장로(최초의 유아 세례자), 서재현 장로(전 강원산업 사장), 서원석 장로(성서공회 본부장), 서경석 목사(경실련 설립자)로 세대를 이어 가면서 한국 교회 흥왕의 목격자 집안 입니다.
서병호 장로, 그는 우리 현대사의 영욕을 비켜 가지 않고 몸소 체험, 헌신, 섬김, 증인으로 살아 온 영적 거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계보처럼 한국 교회의 영적 가문을 아름답게 이루는 축복이 세상에 널리 증거 되어지길 바랍니다. (에수마을교회 / 이승종 목사)
“우리나라 최초의 권서인 증조부처럼 저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동남아 지역을 방문해 그곳에 성경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모금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외에 성경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선조의 뒤를 이어 성서보급운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성서공회 서원석(새문안교회 장로) 본부장은 소래교회의 창설자인 큰증조부 서상륜과 증조부 서경조 목사, 첫 유아세례자인 조부 서병호 장로, 독립운동가인 부친 서재현 장로에 이어 4대째 신앙을 지켜오고 있다. 서원석 본부장의 바로 아래 동생은 경실련 운동을 주도했던 서경석 목사이다.
1985년부터 대한성서공회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이전까지는 농장을 경영하며 사료회사에서 이사로 재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재산을 모으고 세속적으로 출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란 생각을 하게 됐다. 결코 지워질 수 없는 믿음의 발자국을 남긴 조상들의 뒤를 이어 한국 기독교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다. 특히 ‘네 조상을 바라보라’는 교회 어른들의 충고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성서반포 사업에 뛰어들어 21년 동안 한길을 걸어왔다.
그는 핏줄로는 서경조 목사의 후손이지만 호적상으로는 서상륜의 후손이다. 큰증조부 서상륜의 슬하에 아들이 없어 옛날에 흔히 그랬듯 동생 서경조 목사의 둘째아들인 서병호가 서상륜의 아들로 호적에 입적됐다. 그러므로 호적상으로는 서상륜이 증조부이다.
고려시대 권문세족은 이천 서씨,인주 이씨,해주 최씨,남양 홍씨가 4대 문벌귀족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천서씨에서 분파한 대구 서씨(大丘徐氏) 서성(徐渻 증 영의정) 후손이 3대 정승(서종태(徐宗泰 영의정),서명균(徐命均 좌의정),서지수(徐志修 영의정)),3대 대제학(서유신(徐有臣 대제학),서영보(徐榮輔 대제학),서기순(徐箕淳 대제학))을 최초로 6대 연속과 서명응(徐命膺 대제학),서호수(徐浩修 직제학), 서유구 (徐有榘 대제학) 3대 대학자를 연속 배출하여 조선에서는 서지약봉(徐之藥峰)이요.홍지모당(洪之慕堂) 으로 유명했고, 연리광김(延李光金)와 더불어 대구 서씨,풍산 홍씨,연안 이씨,광산 김씨가 조선 최고 4대 양반 가문으로 꼽힌다. 숙종때 이런 일화가 전한다.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비롯한 서씨 성을 가진 참판급 이상 중신이 30여명 이었다. 어느날 조회를 소집한 숙종이 용상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니, 오가는 대신들이 대부분 서씨들이라, “마치 어미 쥐가 새끼쥐를 거느리고 다니는 듯 하다!” 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숙종의 말씀이었으나,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어미쥐로 빗대 그 아래 웅성거리는 서씨대신들의 융성함을 나타내는 기막힌 표현이였다.대구 서씨는 달성 서씨라고도 부른다.
대구 서씨 원조(遠祖) 서한(徐閈) 시제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 하탄방리에서 음력 10월1일에 거행된다
이천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 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연성군(連城君)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 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하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4대째 신앙 전통 이어온 믿음의 가문
서원석장로·서경석목사 가정
대를 이어 신앙의 전통이 이어지는 가정.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갖는 소망일 것이다. 스스로 혹은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 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나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하는 부러움을 가졌을 것이고, 게다가 신앙의 전통이 2대를 넘어 3대, 4대째 이어진다고 하면 그 가정에 대한 부러움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효양산 전설문화축제(孝養山 傳說文化祝祭)
장위공 서희(徐熙) 선생을 되새겨 볼 수 있고, 서신일(徐神逸)선생의 은혜 갚은 사슴과 황금송아지 전설이 있는 효양산의 주요 6개소(물명당, 효양정, 금송아지상, 은선사, 서씨(徐氏)시조 서신일(徐神逸)묘, 금광굴)를 탐방하며, 효양산의 청취를 만끽할 수 있다. 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로 명칭 변경
이섭대천(利涉大川)
창전동 이천시민회관 구내에 세워져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후백제와 마지막 일전을 치르기 위해 출정길에 올랐다가 장마로 물이 불어난 복하천(福河川)을 건너지 못해 곤경에 빠졌을 때 '서목(徐穆)'이라는 이천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복하천을 건너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그 후 왕건이 서목(徐穆)의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이섭대천'이라는 고사에서 따다가 이 지역에 ‘이천(利川)’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이천의 유래에 관한 이 일화를 기념하기 위해 1989년 11월 이천 지역 토박이 원로들의 모임인 이원회(利元會)가 중심이 되어 이천시민회관 구내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2단으로 된 방형의 대좌 위에 길고 커다란 자연석 형태의 흑요암을 올려놓았으며 흑요암 중앙에 '利涉大川(이섭대천)'이라는 글씨를 커다랗게 새겨 넣었다.
서씨 시조 서신일 추향대제(徐氏 始祖 徐神逸 秋享大祭)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