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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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3월 14일 (화) 09:59 판 (출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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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영(粲英)()
대표명칭 찬영(粲英)
영문명칭 Chanyeong
생몰년 1328(충숙왕 15)-1390(공양왕 2)
시호 대지국사(大智國師)
목암(木菴)
찬영(粲英)
탑호 지감원명(智鑑圓明)
고저(古樗)
성씨 한씨(韓氏)
본관 양주(楊州)
승탑비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忠州 億政寺址 大智國師塔碑)



정의

고려후기의 승려

생애

가계와 탄생

Quote-left.png 스님의 휘는 찬영(粲英)이고 字는 고저(古樗)이며, 호는 목암(木菴)이다. 속성은 한씨(韓氏)이며 아버지의 휘(諱)는 적(績)이니 양주(楊州) 사람으로 사복직장(司僕直長)[해설 1]을 역임하였고, 어머니는 곽씨(郭氏)이니, 청주(淸州) 출신으로 선관서승(膳官署丞)[해설 2]인 영번(永潘)의 딸이다. 태정(泰定) 무진년(戊辰年, 1328) 1월 8일에 탄생하였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0-11쪽.


찬영 스님은 1328년 1월 8일에 태어났다.

출가수행

Quote-left.png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찬영 스님은 14세(1341년)에 삼각산 중흥사로 출가하여 원증국사 태고 의 제자가 되었다. 5년 후 정혜국사를 친견하고, 장흥 보림사의 제 2좌(座)가 되었다. 유점사(楡岾寺) 수자화상(守慈和尙)을 친견하고 그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다.

활동

Quote-left.png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승과시험에 상상과로 합격


Quote-left.png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공민왕과의 인연


Quote-left.png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왕사 책봉


Quote-left.png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입적

주석

용어해설

  1. 사복(司僕)은 사복시(司僕寺)로서 고려와 조선 시대에 궁중의 수레, 마필, 목장 등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고려말의 직장(直長)은 종 7품이다.
  2. 선관서는 고려시대에 제사와 연회에 쓰이는 음식을 맡아보던 관서이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