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초상화관 개관

"이광사 초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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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사 초상>은 [[방건]]에 [[도포]]를 입은 [[야복]] 차림으로, [[좌안팔분면]]에 공수자세를 하고 있는 부좌상(趺坐像)이다. [[도포]]는 외곽선과 [[의습]]을 [[도포]] 색보다 짙게 담묵을 칠한 후 선묘 처리하였고 몸체 윤곽의 바깥은 어둡게 선염 처리하여 공간감을 부여하고 몸체를 전면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머리에 쓴 [[방건]]의 성근 발 사이로 상투를 튼 모습이 보인다. 안면은 전체적으로 홍갈색을 기조로 하면서 두께와 농담에 차이를 둔 갈색 선으로 얼굴의 윤곽을 규정하고 이목구비를 표현했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70쪽.</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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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사 초상>은 [[방건]]에 [[도포]]를 입은 야복 차림으로, [[좌안팔분면]]에 공수자세를 하고 있는 부좌상(趺坐像)이다. [[도포]]는 외곽선과 [[의습]]을 [[도포]] 색보다 짙게 담묵을 칠한 후 선묘 처리하였고 몸체 윤곽의 바깥은 어둡게 선염 처리하여 공간감을 부여하고 몸체를 전면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머리에 쓴 [[방건]]의 성근 발 사이로 상투를 튼 모습이 보인다. 안면은 전체적으로 홍갈색을 기조로 하면서 두께와 농담에 차이를 둔 갈색 선으로 얼굴의 윤곽을 규정하고 이목구비를 표현했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70쪽.</ref><br/>
 
얼굴의 생김새는 숱이 많고 긴 수염, 네모진 얼굴, 쌍꺼풀의 큰 눈, 길고 큰 코가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진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광려]]의 기록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얼굴의 생김새는 숱이 많고 긴 수염, 네모진 얼굴, 쌍꺼풀의 큰 눈, 길고 큰 코가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진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광려]]의 기록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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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 (토) 12:27 판


이광사 초상
역사인물초상화 초상 이광사 초상.jpg
한자명칭 李匡師 肖像
작가 신한평
제작시기 1775년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지정사항 보물 제1486호
유형 초상
크기(세로×가로) 66.8x53.7cm


정의

조선시대 서예가, 학자인 이광사(1705~1777)의 모습을 그린 초상.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이광사 초상>은 화원 신한평이 그린 작품으로 이광사의 70세 때의 모습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화제가 쓰여 있다.

Quote-left.png

조선국 완산 이공, 휘는 광사, 자는 도보, 호 원교선생 유상(朝鮮國 完山李公 諱匡師 字道甫 號圓嶠先生 遺像)
우리 영묘 임오년(1762)에 선생은 부령에서 신지도로 이배되었으며, 정유년(1777) 8월 26일에 섬의 금실촌 우사에서 돌아가셨다. 향년 73세였다.(鮮國 完山李公 諱匡師 字道甫 號圓嶠先生 遺像 我 英廟 壬午 先生自富寧移謫 薪智島 丁酉 八月二十六日卒 于島之 金實村寓舍 壽七十三)
이 초상은 70세 선생이 70년 되는 갑오년(1774) 겨울에 신한평이 그린 것이다.(此本卽 先生七十歲 甲午冬 畵師申漢枰 所寫)
8월 26일은 선생의 생신이다. 선생께서는 섬에 계실 때 자칭 수북노인이라 하셨다(八月 二十六日 卽 先生 降辰先生在島 自稱壽北老人)

Quote-right.png
출처: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68~269쪽.[1]


이 화제를 통해 화원 신한평이 유배지로 찾아가 이광사의 70세 초상을 그린 것을 알 수 있다.[2]
<이광사 초상>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가인 신한평어진도사에도 참여했던 뛰어난 초상화가였다. 몇 점 남아있지 않은 유배지에서 그려진 초상화이며 신한평의 작품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초상화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문헌에 기록된 외모

이광사의 외모에 관해서는 친척인 이광려(李匡呂)가 쓴 「원교선생묘지명(圓嶠先生墓誌銘)」에 “몸과 얼굴이 두텁고 크니 쳐다보면 천연스럽고 귀중(貴重)하며 또 음량(飮量)이 크고 목소리가 우렁찼다”는 구절이 있다.[3]

초상에 묘사된 모습

<이광사 초상>은 방건도포를 입은 야복 차림으로, 좌안팔분면에 공수자세를 하고 있는 부좌상(趺坐像)이다. 도포는 외곽선과 의습도포 색보다 짙게 담묵을 칠한 후 선묘 처리하였고 몸체 윤곽의 바깥은 어둡게 선염 처리하여 공간감을 부여하고 몸체를 전면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머리에 쓴 방건의 성근 발 사이로 상투를 튼 모습이 보인다. 안면은 전체적으로 홍갈색을 기조로 하면서 두께와 농담에 차이를 둔 갈색 선으로 얼굴의 윤곽을 규정하고 이목구비를 표현했다.[4]
얼굴의 생김새는 숱이 많고 긴 수염, 네모진 얼굴, 쌍꺼풀의 큰 눈, 길고 큰 코가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진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광려의 기록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이광사 초상 초상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이광사 초상 이광사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이광사 초상 신한평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이광사 초상 국립중앙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이광사 초상 이광사 초상 화제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이광사 초상 원교선생묘지명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원교선생묘지명 이광려 A는 B가 썼다 A dcterms:creator B
이광려 이광사 A는 B와 같은 혈족이다 A ekc:isLineageKinOf B
이광사 초상 좌안팔분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방건 이광사 초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도포 이광사 초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711년 이색 초상이 제작되었다.
1995년 3월 10일 이색 초상이 보물 제1215-1호로 지정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6.674358 126.695273 이색 초상예산 누산영당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주석

  1.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68~269쪽.
  2.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68~269쪽.
  3. 軆䫉敦碩。望之天然貴重。又洪於飮量。善言笑。李匡呂, 「圓嶠先生墓誌銘」, 『圓嶠集』.
  4.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70쪽.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1. "이색초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6년 26일.

더 읽을거리

  1. 단행본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초상화 II』 국립중앙박물관, 2008.
  2. 전시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