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보리사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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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9일 (금) 14:58 판
양평 보리사지 (楊平 菩提寺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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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양평 보리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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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平 菩提寺址 |
주소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
정의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용문산에 있었던 보리사의 터.
내용
양평 보리사는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 없다. 대경국사 여엄은 중국에서 909년(혜공왕 13)에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아 고려 태조의 배려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이 절의 주지로 봉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이미 신라 말기에 절이 경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1] 1407년(태종 7)의 기록에 의하면 보리사는 조계종의 대표적인 사찰로써 보리갑사라 불렀으며 또한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초기의 억불숭유 정책에도 불구하고 보리사의 사격(寺格)은 자복사로 지정될 만큼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120여 년 뒤인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아 이때까지도 사찰이 건재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이후의 연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리적 요충지임을 고려하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는 동안 절이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다.[2]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이미 폐사되었다고 나와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축과 기와 조각, 도자기 조각이 산재해 있다. [3]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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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 |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 A는 B에 있다 | |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있다 | |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 여엄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
(전)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 | 여엄 | A는 B를 위한 탑이다 | |
고려 태조 | 여엄 | A는 B와 관련있다 |
주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