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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5일 (토) 16:36 판

해설

  • 도산십이곡의 끝에 실려 있는 '발문(跋文)'이다. 해당 발문을 통해 도산십이곡이 지어지게 된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원문과 해석문

한글팀 도산십이곡 06 도산십이곡 어부사 발문(1).jpg


원문 해석문
右陶山十二曲者, 陶山老人之所作也. 老人之作此, 何爲也哉. 앞의 도산십이곡은 도산(陶山) 노인(老人)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것을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吾東方歌曲, 大抵多淫哇不足言, 如翰林別曲之類, 出於文人之口, 而矜豪放蕩, 兼以褻慢戱押, 尤非君子所宜尙, 惟近世有李鼈六歌者, 世所盛傳, 猶爲彼善於此, 亦惜乎其有玩世不恭之意, 而少溫柔敦厚之實也. 우리 동방(東方)의 가곡(歌曲)은 대체로 음란한 노래가 많아서 족히 말할 것이 못된다. 한림별곡(翰林別曲)과 같은 작품은 문인(文人)의 입에서 나왔으나, 교만하고 방탕하며, 진지하지 못하고 가볍기까지 하니, 더욱이 군자가 마땅히 숭상할 바가 아니다. 근세에 이별(李鼈)육가(六歌)라는 것이 있어 세상에 성대히 전해져, 오히려 저 이별육가(六歌)가 이 한림별곡보다 낫지만, 또한 애석하게도 이별육가(六歌)는 세상일을 무시하고, 불손한 뜻이 있으며 온유돈후(溫柔敦厚)한 내실이 적다.
老人素不解音律, 而猶知厭聞世俗之樂, 閑居養疾之餘, 凡有感於性情者, 每發於詩, 然今之詩, 異於古之詩, 可詠而不可歌也, 如欲歌之, 必綴以俚俗之語, 蓋國俗音節所不得不然也. 노인(老人)이 평소 음율(音律)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적어도 세속(世俗)의 음악을 듣는 것을 싫어하여, 한가히 기거하며 병을 요양하던 중에 무릇 성정(性情)에 감응하는 것이 있으면 매번 시(詩)로 표현하곤 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시는 옛날의 시와는 달라, 읊조릴 수는 있어도 노래할 수는 없다. 만약 노래를 부르려면 반드시 비속한 말로 엮어야 하니, 이는 대개 우리 나라의 음절(音節)이 어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故嘗略倣李歌而作, 爲陶山六曲者二焉. 其一言志, 其二言學, 欲使兒輩朝夕習而歌之, 憑几而聽之. 亦令兒輩自歌而自舞蹈之, 庶幾可以蕩滌鄙吝, 感發融通, 而歌者與聽者, 不能無交有益焉. 顧自以蹤跡頗乖, 若此等閑事, 或因以慝起鬧端未可知也. 又未信其可以入腔調諧音節與未也. 그래서 일찍이 이별육가(六歌)를 간략히 모방하여 써서, 도산(陶山) 육곡(六曲)으로 지은 것이 둘이다. 그 첫 번째는 언지(言志)이고, 그 두 번째는 언학(言學)이니, 아이들로 하여금 아침저녁으로 익혀 부르게 하여, 궤연에 기대어 듣고자 하는데,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춤추게 하여, 그런대로 비루함과 인색함을 씻어내고 마음에 느끼고 발산하며 원융히 통하여, 노래 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보탬이 없을 수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건대, 나의 종적이 세속과 어긋나서 이러한 별 것 아닌 일로 말미암아 시끄러운 일을 야기할 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것이 곡조(腔調)에 잘 들어맞을지 음절(音節)에 잘 어울릴 지도 확신하지 못하겠다.
姑寫一件, 藏之篋笥, 時取玩以自省, 又以待他日覽者之去取云爾. 우선은 그 한 권을 베껴서 상자에 보관하고, 때때로 꺼내어 즐김으로써 스스로 반성하고, 또한 후대에 이것을 보는 자가 다듬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嘉靖四十四年歲乙丑暮春旣望, 山老書. 가정(嘉靖) 44년(1565), 을축(乙丑) 모춘(暮春) 기망(旣望)(16일)에 도산(陶山) 노인(老人)이 쓰다.


한글팀 도산십이곡 07 도산십이곡 어부사 발문(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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