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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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경인년(庚寅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승과고시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하였고, 계사년(癸巳年)에는 또 공부선과(功夫選科)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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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경인년(庚寅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승과고시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하였고, 계사년(癸巳年)에는 또 공부선과(功夫選科)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그 당시 국일지엄존자(國一智嚴尊者)가 스님의 관상을 보고 이르기를 "이 사람은 반드시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출처=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2쪽.}}  
 
|출처=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2쪽.}}  
찬영스님은 22세의 나이에 승과시험에 상상과로 합격하고, 3년후 25세 때는 전국의 교종과 선종의 모든 스님을 모아 각기 스스로 얻은 바의 견해를 시험한 시험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이는 찬영스님의 불교에 대한 깊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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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영스님은 22세의 나이에 승과시험에 상상과로 합격하고, 3년후 25세 때는 전국의 교종과 선종의 모든 스님을 모아 각기 스스로 얻은 바의 견해를 시험한 시험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이미 승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두각을 나타낸 찬영을 두고 당시 고승 국일지엄존자(國一智嚴尊者)가 찬영이 왕사가 될 것이라 예언 하였다.
  
  

2017년 3월 14일 (화) 10:24 판


찬영(粲英)()
대표명칭 찬영(粲英)
영문명칭 Chanyeong
생몰년 1328(충숙왕 15)-1390(공양왕 2)
시호 대지국사(大智國師)
목암(木菴)
찬영(粲英)
탑호 지감원명(智鑑圓明)
고저(古樗)
성씨 한씨(韓氏)
본관 양주(楊州)
승탑비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忠州 億政寺址 大智國師塔碑)



정의

고려후기의 승려

생애

가계와 탄생

Quote-left.png 스님의 휘는 찬영(粲英)이고 字는 고저(古樗)이며, 호는 목암(木菴)이다. 속성은 한씨(韓氏)이며 아버지의 휘(諱)는 적(績)이니 양주(楊州) 사람으로 사복직장(司僕直長)[해설 1]을 역임하였고, 어머니는 곽씨(郭氏)이니, 청주(淸州) 출신으로 선관서승(膳官署丞)[해설 2]인 영번(永潘)의 딸이다. 태정(泰定) 무진년(戊辰年, 1328) 1월 8일에 탄생하였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0-11쪽.


찬영 스님은 1328년 1월 8일에 태어났다.

출가수행

Quote-left.png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찬영 스님은 14세(1341년)에 삼각산 중흥사로 출가하여 원증국사 태고 의 제자가 되었다. 5년 후 정혜국사를 친견하고, 장흥 보림사의 제 2좌(座)가 되었다. 유점사(楡岾寺) 수자화상(守慈和尙)을 친견하고 그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다.

활동

Quote-left.png 경인년(庚寅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승과고시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하였고, 계사년(癸巳年)에는 또 공부선과(功夫選科)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그 당시 국일지엄존자(國一智嚴尊者)가 스님의 관상을 보고 이르기를 "이 사람은 반드시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2쪽.


찬영스님은 22세의 나이에 승과시험에 상상과로 합격하고, 3년후 25세 때는 전국의 교종과 선종의 모든 스님을 모아 각기 스스로 얻은 바의 견해를 시험한 시험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이미 승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두각을 나타낸 찬영을 두고 당시 고승 국일지엄존자(國一智嚴尊者)가 찬영이 왕사가 될 것이라 예언 하였다.


Quote-left.png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공민왕과의 인연


Quote-left.png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왕사 책봉


Quote-left.png 14살 때 서울로 유람차 왔다가 삼각산(三角山)의 삼봉(三峰)이 우뚝 서서 초연(超然)함을 바라보고, 출가(出家)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원증국사(圓證國師)를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법(法)을 배웠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충주 억정사 대지국사 지감원명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조선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3, 11쪽.


입적

주석

용어해설

  1. 사복(司僕)은 사복시(司僕寺)로서 고려와 조선 시대에 궁중의 수레, 마필, 목장 등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고려말의 직장(直長)은 종 7품이다.
  2. 선관서는 고려시대에 제사와 연회에 쓰이는 음식을 맡아보던 관서이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