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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어제자성편 언해의 특징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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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영조|영조]]가 『[[자성편]]』을 쓸 때 [[정재륜|정재륜(鄭載崙,1648~1723)]]의 『[[공사견문록|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을 참고했음을 알 수 있다. [[정재륜]]은 [[조선 효종|효종]]의 다섯째 부마로 [[숙정공주]]의 남편이고, 『공사견문록』은 [[조선 효종|효종]]부터 [[조선 경종|경종]]까지 궁중의 아름다운 말과 행실을 기록한 책이다. 「수서」는 영조가 직접 짓고 [[이철보|이철보(李喆輔,1691~1775)]]가 글씨를 썼다. 특히 말미에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내 깁히 원량의 ᄇᆞ라미 잇노라</span>'이라 한 것은 이 글이 [[사도세자|사도세자(원량)]] 에게 보여 감계를 주기 위한 것임을 알려준다.1759년 [[조선 영조|영조]]는 『[[자성편]]』의 실천 여부를 반성하고 후손들이 깨들아 경계할 수 있는 교본으로 『[[속자성편]]』을 저술한다. <ref>박용만, 「英祖 御製冊의 자료적 성격」, 『장서각』제11집, 한국학중앙연구원 , 2004, 11-14쪽.</ref> 『[[속자성편]]』도 『[[자성편]]』과 마찬가지로 간행된 이후 『[[속자성편언해]]』라는 한글필사본이 제작되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영조|영조]]가 『[[자성편]]』을 쓸 때 [[정재륜|정재륜(鄭載崙,1648~1723)]]의 『[[공사견문록|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을 참고했음을 알 수 있다. [[정재륜]]은 [[조선 효종|효종]]의 다섯째 부마로 [[숙정공주]]의 남편이고, 『공사견문록』은 [[조선 효종|효종]]부터 [[조선 경종|경종]]까지 궁중의 아름다운 말과 행실을 기록한 책이다. 「수서」는 영조가 직접 짓고 [[이철보|이철보(李喆輔,1691~1775)]]가 글씨를 썼다. 특히 말미에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내 깁히 원량의 ᄇᆞ라미 잇노라</span>'이라 한 것은 이 글이 [[사도세자|사도세자(원량)]] 에게 보여 감계를 주기 위한 것임을 알려준다.1759년 [[조선 영조|영조]]는 『[[자성편]]』의 실천 여부를 반성하고 후손들이 깨들아 경계할 수 있는 교본으로 『[[속자성편]]』을 저술한다. <ref>박용만, 「英祖 御製冊의 자료적 성격」, 『장서각』제11집, 한국학중앙연구원 , 2004, 11-14쪽.</ref> 『[[속자성편]]』도 『[[자성편]]』과 마찬가지로 간행된 이후 『[[속자성편언해]]』라는 한글필사본이 제작되었다.
 
===[[어제자성편 언해]]의 특징과 의의===
 
===[[어제자성편 언해]]의 특징과 의의===
『[[어제자성편 언해]]』는 18세기 왕실에서 쓰인 국어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음운변화의 양상이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특징은 왕실자료가 지닌 관습적이고 규범적인 표기의 보수성을 반영하는 한편, 왕실과 상류층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를 보여준다.<ref>김주필, 「영조 어제류 한글 필사본의 표기와 음운현상」, 『장서각』제11집,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57쪽.</ref> 또한 『[[어제자성편 언해]]』는 후에 따로 필사한 것이다. 이는 [[사도세자|원량]]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왕실에서 이루어진 언해와 필사 작업이 대부분 여성을 위한 것이었던 만큼 이 책 역시 왕실 여성을 위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ref>이광호·박부자·정재영·김주필·김목한·이근용·백두현·이래호·배영환·신성철·황문환·정승혜·이현주·정은균, 『장서각 소장 한글필사자료 연구』, 태학사, 2007, 4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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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자성편 언해]]』는 18세기 왕실에서 쓰인 국어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음운변화의 양상이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특징은 왕실자료가 지닌 관습적이고 규범적인 표기의 보수성을 반영하는 한편, 왕실과 상류층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를 보여준다.<ref>김주필, 「영조 어제류 한글 필사본의 표기와 음운현상」, 『장서각』제11집,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57쪽.</ref> 또한 『[[어제자성편 언해]]』는 후에 따로 필사한 것이다. 이는 [[사도세자|원량]]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왕실에서 이루어진 언해와 필사 작업이 대부분 여성을 위한 것이었던 만큼 이 책 역시 왕실 여성을 위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ref>이광호·박부자·정재영·김주필·김목한·이근용·백두현·이래호·배영환·신성철·황문환·정승혜·이현주·정은균, 『장서각 소장 한글필사자료 연구』, 태학사, 2007, 4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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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5일 (화) 11:34 판

어제자성편 언해
한글팀 어제자성편언해.jpg
한자명칭 御製自省編 諺解
영문명칭 King Yeongjo's compliation of selected passages from the classics and his own advice to the crown prince
작자 조선 영조
간행시기 1746년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4-4106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7.6×24.2㎝
판본 필사본
수량 2冊
표기문자 한글, 한자


정의

영조가 자신을 성찰하고 왕세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저술한 책으로, 영조 자신이 임금으로 재위하는 동안 실행에 옮기지 못한 신념과 사업이 세자에 의해 계승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역대 제왕의 사적 중 모범이 될 만한 내용을 간추려 편찬한 『자성편(自省編)』을 언해한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영조가 자신을 성찰하고 왕세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역대 제왕의 사적 중 모범이 될 만한 내용을 간추려 편찬한 『자성편(自省編)』을 언해한 책이다. 한문본은 1746년 문정전(文政殿)에서 2권 2책으로 편집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한문본과 함께 간행하려 했던 초본(草本)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체가 정연하고 흘림이 없으며, 편집이 잘 되어 있고 표지 장정이 호화롭다. 언해본의 언해자 및 필사자, 시기 등은 알 수 없다. 책의 체재는 「수서(首序)」, 「내편(內篇)」, 「외편(外篇)」, 「소지(小識)」, 「고교제신함명(古敎諸臣啣名)」 으로 이루어졌으며, 「수서」 와 「후발」에는 1746년 2월 17일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내편」은 심신(心身)을 위주로 한 내용이고, 「외편」은 감계(監戒)를 위주로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영조는 「수서」에서 이 책이 평소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지난 일을 생각하며 감흥이 있는 것[追慕而興感], 생각하여 하나라도 얻은 것[思慮而一得], 잘못했다가 문득 깨달은 것[過差而旋悟], 역사 기록을 보다가 반성한 것[看史而反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세자에게 보여 가르쳐 깨닫게 하려는 의도에서 저술했음을 밝히며, 영조 자신이 실행에 옮기지 못한 신념과 사업이 세자에 의해 계승되기를 기대하였다. [1]

자성편의 편찬과 배경

영조실록에 따르면 영조가 『자성편』을 쓸 때 정재륜(鄭載崙,1648~1723)의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을 참고했음을 알 수 있다. 정재륜효종의 다섯째 부마로 숙정공주의 남편이고, 『공사견문록』은 효종부터 경종까지 궁중의 아름다운 말과 행실을 기록한 책이다. 「수서」는 영조가 직접 짓고 이철보(李喆輔,1691~1775)가 글씨를 썼다. 특히 말미에 '내 깁히 원량의 ᄇᆞ라미 잇노라'이라 한 것은 이 글이 사도세자(원량) 에게 보여 감계를 주기 위한 것임을 알려준다.1759년 영조는 『자성편』의 실천 여부를 반성하고 후손들이 깨들아 경계할 수 있는 교본으로 『속자성편』을 저술한다. [2]속자성편』도 『자성편』과 마찬가지로 간행된 이후 『속자성편언해』라는 한글필사본이 제작되었다.

어제자성편 언해의 특징과 의의

어제자성편 언해』는 18세기 왕실에서 쓰인 국어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음운변화의 양상이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특징은 왕실자료가 지닌 관습적이고 규범적인 표기의 보수성을 반영하는 한편, 왕실과 상류층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를 보여준다.[3] 또한 『어제자성편 언해』는 후에 따로 필사한 것이다. 이는 원량을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왕실에서 이루어진 언해와 필사 작업이 대부분 여성을 위한 것이었던 만큼 이 책 역시 왕실 여성을 위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4]


연계 자원 보러 가기
어제자성편 언해 (해독)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자성편 조선 영조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이철보 자성편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속자성편 조선 영조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속자성편 자성편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속자성편언해 속자성편 A는 B의 언해본이다 A edm:isDerivativeOf B
어제자성편 언해 자성편 A는 B의 언해본이다 A edm:isDerivativeOf B
어제자성편 언해 원량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원량 사도세자 A는 B와 유사하다 A owl:sameAs B
조선 영조 사도세자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공사견문록 자성편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공사견문록 정재륜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조선 효종 숙정공주 A는 딸 B를 두었다 A ekc:hasDaughter B
숙정공주 정재륜 A는 B의 아내이다 A ekc:hasHusband B
어제자성편 언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746년 영조자성편을 저술하였다
1759년 영조속자성편을 저술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어제자성편 언해를 소장하였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70-71쪽.
  2. 박용만, 「英祖 御製冊의 자료적 성격」, 『장서각』제11집, 한국학중앙연구원 , 2004, 11-14쪽.
  3. 김주필, 「영조 어제류 한글 필사본의 표기와 음운현상」, 『장서각』제11집,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57쪽.
  4. 이광호·박부자·정재영·김주필·김목한·이근용·백두현·이래호·배영환·신성철·황문환·정승혜·이현주·정은균, 『장서각 소장 한글필사자료 연구』, 태학사, 2007, 42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조항범·김주필·황문환·박용만, 『(역주) 어제자성편:언해』, 역락, 2006.
    • 김목한·김성규·남윤진·박부자·박진호·이래호·이현주·정승혜·정윤자·정재영·황문환·황선엽·홍은진, 『장서각한글자료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 논문
    • 김문식, 「영조의 제왕학과 《御製自省編》」, 『장서각』제27집, 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 조항범, 「영조 어제류 한글 필사본의 어휘론적 고찰」, 『장서각』제11집,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 웹자원
    • 전광현, "어제자성편언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