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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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는 높이 3.06m, 너비 1.6m, 재료는 화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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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06m, 너비 1.6m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비의 형식은 당비(唐碑)의 형식을 닮은 복고풍의 것으로 이수(螭首)를 별도로 만들지 않고 비신 윗부분에 두마리의 용을 깊게 조각하고 그 중앙에 제액을 만들어 ‘禪覺王師之碑(선각왕사지비)' 6자를 새겼다.<ref>"[http://www.k-heritage.tv/brd/board/276/L/menu/259?bbIdx=8759&brdType=R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비를 지고 있는 돌거북은 큰 돌을 단순한 조각기법으로 새겨 다소 추상적으로 다루어 놓았으나, 비머릿돌에 새겨진 용의 조각은 정갈하면서도 역동적이다.<ref>"[http://www.k-heritage.tv/brd/board/276/L/menu/259?bbIdx=8759&brdType=R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채널』<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문화재단.</ref> 비문의 글은 이색이 짓고, 글씨는 권중화가 썼다.  비는 1997년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성묘객의 실화로 일어난 산불에 훼손돼 보존처리된 후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비를 받치고 서 있던 귀부는 제 모습을 잃은 채 옛 자리에 남아있고, 그 옆에 비를 본떠 만든 모조비가 세워져 있다.<ref>행복한 놀부, "[http://yinolbu.blog.me/150027178201?Redirect=Log&from=postView 양주 회암사 선각왕사비 귀부]",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블로그 - 절(터) 찾아 떠나는 여행』<sup>online</sup></online></html>, 작성일: 2007년 12월 9일.</ref>선각왕사의 비는 간략한 내용의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신륵사비]]도 있고 [[원주 영전사 보제존자 사리탑|영전사 탑지]]로 추정되는 탑지도 있어 비문 자료가 다수이다.<ref>"[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3486 회암사지선각왕사비]", 금석문세부정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sup>online</sup></online></html>, 국립문화재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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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4일 (일) 17:21 판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楊州 檜巖寺址 禪覺王師碑)
BHST Stele.png
대표명칭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영문명칭 Stele for Royal Preceptor Seongak at Hoeamsa Temple Site, Yangju
한자 楊州 檜巖寺址 禪覺王師碑
주소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8-1번지 회암사(귀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5 불교중앙박물관(비신)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387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9월 2일
찬자 이색(李穡)
서자 권중화(權仲和)
각자 미상
서체 예서(隷書)
승려 나옹(懶翁)



정의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에 있는 고려시대의 승려 선각왕사 나옹(禪覺王師 懶翁, 1320-1377)의 비.

내용

개요

높이 3.06m, 너비 1.6m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비의 형식은 당비(唐碑)의 형식을 닮은 복고풍의 것으로 이수(螭首)를 별도로 만들지 않고 비신 윗부분에 두마리의 용을 깊게 조각하고 그 중앙에 제액을 만들어 ‘禪覺王師之碑(선각왕사지비)' 6자를 새겼다.[1] 비를 지고 있는 돌거북은 큰 돌을 단순한 조각기법으로 새겨 다소 추상적으로 다루어 놓았으나, 비머릿돌에 새겨진 용의 조각은 정갈하면서도 역동적이다.[2] 비문의 글은 이색이 짓고, 글씨는 권중화가 썼다. 비는 1997년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성묘객의 실화로 일어난 산불에 훼손돼 보존처리된 후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비를 받치고 서 있던 귀부는 제 모습을 잃은 채 옛 자리에 남아있고, 그 옆에 비를 본떠 만든 모조비가 세워져 있다.[3]선각왕사의 비는 간략한 내용의 신륵사비도 있고 영전사 탑지로 추정되는 탑지도 있어 비문 자료가 다수이다.[4]



비문

전면

후면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문화유산채널』online, 한국문화재단.
  3. 행복한 놀부, "양주 회암사 선각왕사비 귀부", 『네이버 블로그 - 절(터) 찾아 떠나는 여행』online, 작성일: 2007년 12월 9일.
  4. "회암사지선각왕사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