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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0월, [[고종]]이 [[환구단]]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다.<ref>김문식, 「高宗의 皇帝 登極儀에 나타난 상징적 함의」, 『조선시대사학보』 37, 조선시대사학회, 2006, 8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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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2일 전, 재사(齋祠)ㆍ찬실(饌室)ㆍ신주(神廚)를 쓸고 닦고 [[왕]]과 [[왕세자]]의 자리를 설치하며, 제사 1일 전, 악현(樂懸)을 설치한다. 제사 당일 인시(寅時, 오전 3시~5시 사이) 3각 전, 향관(享官) 이하가 [[백관의 제복|제복을]] 입고, 배향관 4품 이상은 [[백관의 조복]], 5품 이하는 [[단령]]을 입는다. [[흥선대원군]]이 [[백관의 조복|조복]]을 입고 자리로 나간다. [[왕세자]]는 [[왕세자의 대례복|면복]]을 입고, [[규(왕실남성)]]를 잡고 나와 자리로 나아간다. [[고종]]은 [[왕의 대례복|면복]]을 입고 나와 [[규(왕실남성)]]를 잡고, 의식을 행한다. [[고종]]이 손을 씻고, 황천상제(皇天上帝)와 황지지(皇地祗)의 신위에 울창주(鬱鬯酒)를 올리고, 세 번 향을 올린 다음, 폐백을 올린다. 다음 세 번 술잔을 올리고, 제사를 마친 [[고종]]이 음복을 한 다음 국궁사배(鞠躬四拜)를 하면, [[왕세자]]를 비롯한 참여자들도 같이 한다. 변두(邊豆)를 치우고, [[망료례|망료례(望燎禮)]]를 행하는 자리에 나아가 제사에 사용된 축문을 태우면 의식이 끝난다.<ref>『[[고종대례의궤]]』 「儀註帙」 ‘親臨誓戒儀’</ref> [[고종]]이 [[환구단]]에서 천지의 신에게 [[고유제]]를 올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은 명나라 [[황제]]의 전례를 정리한 [[대한예전|『대한예전』]]의 ‘원구단 제례(圜丘壇 祭禮)’와 ‘황제 등극의(皇帝 登極儀)’를 인용하였는데, [[고종]]은 고례(古禮)를 참작하되 적절히 가감할 것을 명해 모든 면에서 명나라의 제도와 일치하지는 않았다. [[고종]]은 [[등극의]]에 [[황제의 대례복]]을 착용한 이후부터 ‘[[황제]]’라고 표현하고 있다.<ref>김문식, 「高宗의 皇帝 登極儀에 나타난 상징적 함의」, 『조선시대사학보』 37, 조선시대사학회, 2006, 85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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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사원구의는 등극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제사 이틀 전, 재사(齋祠)ㆍ찬실(饌室)ㆍ신주(神廚)를 쓸고 닦고 [[왕]]과 [[왕세자]]의 자리를 설치하며, 제사 하루 전, 악현(樂懸)을 설치한다. 제사 당일 인시(寅時, 오전 3시~5시 사이) 3각 전, 향관(享官) 이하가 [[백관의 제복|제복을]] 입고, 배향관 4품 이상은 [[백관의 조복]], 5품 이하는 [[단령|흑단령]]을 입는다. [[흥선대원군]]이 [[백관의 조복|조복]]을 입고 자리로 나간다. [[왕세자]]<ref>『高宗大禮儀軌』 「儀註帙」: ‘親祀圓丘儀’에는 ‘왕태자(王太子)’로 되어있다. 이하 같다.</ref>는 [[왕세자의 대례복|면복]]을 입고, [[규(왕실남성)|규]]를 잡고 나와 자리로 나아간다. [[고종]]은 [[왕의 대례복|면복]]을 입고 나와 [[규(왕실남성)|규]]를 잡고, 의식을 행한다. [[고종]]이 손을 씻고, 황천상제(皇天上帝)와 황지지(皇地祗)의 신위에 울창주(鬱鬯酒)를 올리고, 세 번 향을 올린 다음, 폐백을 올린다. 다음 세 번 술잔을 올리고, 제사를 마친 [[고종]]이 음복을 한 다음 국궁사배(鞠躬四拜)한다. [[왕세자]]를 비롯한 참여자들도 같이 한다. 변두(邊豆)를 치우고, [[망료례|망료례(望燎禮)]]를 행하는 자리에 나아가 제사에 사용된 축문을 태우면 의식이 끝난다.<ref>『高宗大禮儀軌』 「儀註帙」: ‘親祀圓丘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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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예술원 음악사료강독회, 『(국역) 高宗大禮儀軌』, 민속원, 2012.  
 
* 전통예술원 음악사료강독회, 『(국역) 高宗大禮儀軌』, 민속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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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궁중기록화]] [[분류:개념]] [[분류:의례]]
 
[[분류:궁중기록화]] [[분류:개념]] [[분류:의례]]

2017년 11월 4일 (토) 14:33 기준 최신판

친사원구의
(親祀圓丘儀)
대표명칭 친사원구의
한자표기 親祀圓丘儀
유형 의례
관련개념 가례, 등극례



정의

1897년 10월, 고종환구단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다.[1]

내용

친사원구의는 등극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제사 이틀 전, 재사(齋祠)ㆍ찬실(饌室)ㆍ신주(神廚)를 쓸고 닦고 왕세자의 자리를 설치하며, 제사 하루 전, 악현(樂懸)을 설치한다. 제사 당일 인시(寅時, 오전 3시~5시 사이) 3각 전, 향관(享官) 이하가 제복을 입고, 배향관 4품 이상은 백관의 조복, 5품 이하는 흑단령을 입는다. 흥선대원군조복을 입고 자리로 나간다. 왕세자[2]면복을 입고, 를 잡고 나와 자리로 나아간다. 고종면복을 입고 나와 를 잡고, 의식을 행한다. 고종이 손을 씻고, 황천상제(皇天上帝)와 황지지(皇地祗)의 신위에 울창주(鬱鬯酒)를 올리고, 세 번 향을 올린 다음, 폐백을 올린다. 다음 세 번 술잔을 올리고, 제사를 마친 고종이 음복을 한 다음 국궁사배(鞠躬四拜)한다. 왕세자를 비롯한 참여자들도 같이 한다. 변두(邊豆)를 치우고, 망료례(望燎禮)를 행하는 자리에 나아가 제사에 사용된 축문을 태우면 의식이 끝난다.[3] 고종환구단에서 천지신명에게 고유제를 올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은 명나라 황제의 전례를 정리한 『대한예전』의 ‘원구단 제례(圜丘壇 祭禮)’와 ‘황제 등극의(皇帝 登極儀)’를 인용하였다. 그러나 고종은 고례(古禮)를 참작하되 적절히 가감할 것을 명해 명나라의 제도와 모든 면에서 일치하지는 않았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친사원구의 A는 B를 거행한다 A는 B를 거행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왕세자 친사원구의 A는 B를 거행한다 A는 B를 거행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조선 고종 친사원구의 A는 B를 거행한다 A는 B를 거행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백관 친사원구의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등극례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친사원구의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 A는 순서상 B의 뒤이다 A edm:isNextInSequence B
왕의 대례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세자 왕세자의 대례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4품 이상 백관 백관의 조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5품 이하 백관 흑단령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친사원구의를 거행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65070 126.979679 환구단은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112에 위치한다

주석

  1. 김문식, 「高宗의 皇帝 登極儀에 나타난 상징적 함의」, 『조선시대사학보』 37, 조선시대사학회, 2006, 82쪽.
  2. 『高宗大禮儀軌』 「儀註帙」: ‘親祀圓丘儀’에는 ‘왕태자(王太子)’로 되어있다. 이하 같다.
  3. 『高宗大禮儀軌』 「儀註帙」: ‘親祀圓丘儀’
  4. 김문식, 「高宗의 皇帝 登極儀에 나타난 상징적 함의」, 『조선시대사학보』 37, 조선시대사학회, 2006, 85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대한예전(大韓禮典)』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국립고궁박물원 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0.
  • 김문식, 「高宗의 皇帝 登極儀에 나타난 상징적 함의」, 『조선시대사학보』 37, 조선시대사학회, 2006.
  • 김문식, 「장지연이 편찬한 『대한예전』」, 『문헌과 해석』 35, 문헌과 해석사, 2006.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일지사, 2000.
  • 김지영ㆍ김문식 외 4명, 『즉위식, 국왕의 탄생』, 돌베개, 2013.
  • 이민원, 『한국의 황제』, 대원사, 2001.
  • 이욱, 「대한제국기 환구제(圜丘祭)에 관한 연구」, 『종교연구』 30, 한국종교학회, 2003.
  • 임민혁, 「대한제국기 大韓禮典의 편찬과 황제국 의례」, 『역사와 실학』 제34집, 역사실학회, 2007.
  • 전통예술원 음악사료강독회, 『(국역) 高宗大禮儀軌』, 민속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