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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0일 (일) 15:37 판

망료례
(望燎禮)
대표명칭 망료례
한자표기 望燎禮
이칭 예필(禮畢)
유형 의례
관련개념 길례(제례)



정의

제례의 마지막 절차로, 제사에 사용한 축판(祝板)과 폐백(幣帛) 등을 태운다.[1]

내용

대축(大祝)이 제사에 사용한 축판(祝板)과 폐백(幣帛) 등을 땔나무 위에 놓고 태우는 것을 초헌관 등이 지켜보는 일이다.[2] 1757년(영조 33) 이후 불결함 등을 이유로 지기(地祇, 땅의 신)와 귀신[人鬼]의 모든 제사에서도 축판과 폐백을 땅에 묻는 ‘망예(望瘗)’ 대신 불에 태우도록 해 이후 사직(社稷) 등의 제사에서는 폐백은 태우고 축판만 땅에 묻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왕세자 망료례 A는 B를 거행한다
백관 망료례 A는 B를 행한다
망료례 종묘제례 A는 B의 부분이다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國朝五禮儀』 卷1, 「吉禮」 “壇廟圖說”, “春秋享永寧殿儀”.
  2. 『國朝五禮儀』 卷1, 「吉禮」 “壇廟圖說”, “春秋享永寧殿儀”.
  3. 『영조실록』 卷90, 영조 33년 10월 10일 ‘시임·원임 대신 등과 의논하고 망예를 망료례로 하고 조조례를 정하다.’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國朝五禮儀』
  • 『世宗實錄五禮儀』
  • 김문식ㆍ김지영 외 4명,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김문식ㆍ송지원, 「국가제례의 변천과 복원」, 『서울 20세기 생활ㆍ문화변천사』, 서울시정개발원, 2001.
  • 이욱, 「근대 국가의 모색과 국가의례의 변화-1894~1908년 국가 제사의 변화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95,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 이욱, 「조선전기 유교국가의 성립과 국가제사의 변화」, 『한국사연구』 118, 한국사연구회, 2002.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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