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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사는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는데, 『[[삼국유사|삼국유사(三國遺事)]]』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四佛山 掘佛山 萬佛山)」조에 대승사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ref>사찰문화연구원, "대승사", 『전통사찰총서 17 - 경북의 전통사찰IV』, 사찰문화연구원, 2001, 177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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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사는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는데, 『[[삼국유사|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四佛山 掘佛山 萬佛山)」조에 대승사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ref>사찰문화연구원, "대승사", 『전통사찰총서 17 - 경북의 전통사찰IV』, 사찰문화연구원, 2001, 177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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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竹嶺) 동쪽 1백리 가량 떨어진 마을에 높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眞平王) 46년 갑신(甲申)에 홀연히 사면이 한 발이나 되는 큰 돌에 사방여래(四方如來: 사방의 불국토에 사는 부처)를 조각하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감싼 것이 하늘로부터 그 산 정상에 떨어졌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쳐다보고 예경한 후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니를 청하여 절을 맡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돌을 공양하며 향불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 산을 역덕산(亦德山)이라고 하며, 혹은 사불산(四佛山: 대승사가 위치한 산으로, 산 위 바위에 새겨진 사방불에 이하여 산 이름이 지어짐)이라고도 한다. 비구니가 죽자 장사지냈더니 무덤위에서 연(蓮)이 났었다.
 
|죽령(竹嶺) 동쪽 1백리 가량 떨어진 마을에 높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眞平王) 46년 갑신(甲申)에 홀연히 사면이 한 발이나 되는 큰 돌에 사방여래(四方如來: 사방의 불국토에 사는 부처)를 조각하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감싼 것이 하늘로부터 그 산 정상에 떨어졌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쳐다보고 예경한 후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니를 청하여 절을 맡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돌을 공양하며 향불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 산을 역덕산(亦德山)이라고 하며, 혹은 사불산(四佛山: 대승사가 위치한 산으로, 산 위 바위에 새겨진 사방불에 이하여 산 이름이 지어짐)이라고도 한다. 비구니가 죽자 장사지냈더니 무덤위에서 연(蓮)이 났었다.

2017년 7월 25일 (화) 12:47 판

문경 대승사
(聞慶 大乘寺)
대표명칭 문경 대승사
한자 聞慶 大乘寺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
교구정보 대한불교조계종
건립시기 587년



정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에 있는 절로 직지사(直指寺)의 말사.

내용

역사

대승사는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는데, 절이 창건된 시기는 신라에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된 지 70여 년이 지난 때였으므로, 대승사는 신라불교의 개척자와 같은 존재였고, 왕이 직접 행차하여 창건을 명하였으므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이었다.[1] 고려 고종 때 상주목사 최자(崔滋)는 대승사의 서남쪽에 있는 백련사(白蓮寺)를 새롭게 단장하였으며, 조선 초기 득통기화(得通己和, 1376-1433)가 이 절의 조전(祖殿)에 있으면서 『반야경(般若經)』을 연구하였고, 반야사(般若社)를 결성하여 후학들을 지도하였다.[2] 1644년(인조 22)과 1722년(경종 2)에 의현(義玄)·종수(鍾守) 등이 중수하였고, 1831년(순조 31) 구담(九潭)이 중창하였다. 1922년 대화재로 불타, 의운(義雲)·덕산(德山)이 복원시켰는데, 1956년 또 대화재가 발생, 명부전과 극락전만 남고 소실되어, 1966년 남인(南印)·대휴(大休) 등에 의해 삼창(三創)되었다.[3]

창건설화

대승사는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四佛山 掘佛山 萬佛山)」조에 대승사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4]

Quote-left.png 죽령(竹嶺) 동쪽 1백리 가량 떨어진 마을에 높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眞平王) 46년 갑신(甲申)에 홀연히 사면이 한 발이나 되는 큰 돌에 사방여래(四方如來: 사방의 불국토에 사는 부처)를 조각하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감싼 것이 하늘로부터 그 산 정상에 떨어졌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쳐다보고 예경한 후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니를 청하여 절을 맡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돌을 공양하며 향불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 산을 역덕산(亦德山)이라고 하며, 혹은 사불산(四佛山: 대승사가 위치한 산으로, 산 위 바위에 새겨진 사방불에 이하여 산 이름이 지어짐)이라고도 한다. 비구니가 죽자 장사지냈더니 무덤위에서 연(蓮)이 났었다. Quote-right.png
출처: "진평왕때 사불산에 사방여래가 떨어졌다", 삼국유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online, 국사편찬위원회.


관련암자

관련문화유산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시각자료

주석

  1. 사찰문화연구원, "대승사", 『전통사찰총서 17 - 경북의 전통사찰IV』, 사찰문화연구원, 2001, 177쪽.
  2. 박상국, "대승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대승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4. 사찰문화연구원, "대승사", 『전통사찰총서 17 - 경북의 전통사찰IV』, 사찰문화연구원, 2001, 177쪽.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