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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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鄭敍)
대표명칭 정서
한자표기 鄭敍
본관 동래(東萊)
과정(瓜亭)
시대 고려
정항(鄭沆)



정의

고려 중기의 문신.

내용

가계

정서(鄭敍)는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정항(鄭沆)의 아들로, 인종 비인 공예태후(恭睿太后) 동생의 남편이다.[1]

활동

정서는 음보(蔭補)로 내시낭중(內侍郞中)에 이르렀다. 1151년(의종 5)에 폐신(嬖臣) 정함(鄭諴)·김존중(金存中)의 참소로 동래 및 거제로 유배되었다가 1170년(명종 1)에 풀려났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성격이 경박하였다고도 하나 그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2]

저술 및 작품

정서는 유배 당시에 왕으로부터 소명(召命)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소명이 없자 연군(戀君)의 정을 가요(歌謠)로 읊었는데 이를 『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는 『삼진작(三眞勺)』이라 하였고 후세인들은 『정과정곡(鄭瓜亭曲)』이라 불렀다. 1170년(명종 즉위) 용서를 받고 다시 등용되었으며 묵죽화(墨竹畵)에 뛰어났다. 저서에 『과정잡서(瓜亭雜書)』가 있다.[3]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탑비 찬자

정서는 1173년(명종 3)에 건립된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비의 비문을 썼다. 그의 매부인 최유청(崔惟淸)은 이 비의 비문을 지었다.[4]

지식관계망

  •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고려 인종 정서 A는 B의 친척이다 A ekc:isLineageKinOf B
최유청 정서 A는 B의 친척이다 A ekc:isLineageKinOf B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비 정서 A는 B가 비문을 썼다 A ekc:calligrapher B
정과정곡 정서 A는 B가 저술하였다 A dcterms:creator B

주석

  1. 전규태, "정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전규태, "정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정서",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4. "옥룡사선각국사비", 금석문 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참고문헌

  • 전규태, "정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정서",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