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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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李秉喆) | |
대표명칭 | 이병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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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李秉喆 |
생몰년 | 1910년-1987년 |
본관 | 경주(慶州) |
호 | 호암(湖巖) |
출생지 | 경남 의령 |
시대 | 현대 |
국적 | 대한민국 |
대표저서 | 『우리가 잘사는 길』,『호암자전』 |
배우자 | 박두을(朴杜乙) |
부 | 이찬우(李纘雨) |
모 | 권재림(權在林) |
자녀 | 이인희,이맹희,이창희,이건희,이명희,이숙희 |
상훈 | 금탑산업훈장, 세계최고경영인상 |
유형 | 기업인 |
목차
정의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설립한 20세기의 대표적 기업인이다.
내용
사업이력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세워 사업에 투신한 후, 1938년 3월 자본금 3만 원으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설립하였다.
1951년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을 하면서 1953∼1954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 제조업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사업 영역을 크게 확대하였으며,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1964년 동양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과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하여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였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하여 삼성그룹 육성의 도약대를 만들었다. 1974년 삼성석유화학, 삼성중공업을 설립하여 중화학공업에 진출하였고, 이후 용인자연농원, 삼성정밀 등을 설립하였다. 1982년 삼성반도체통신을 설립하였다.[1]
사카린 밀수사건
1966년 회장으로 있던 한국비료공업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논란에 휩싸이자 회사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 및 각종 언론, 학원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완전히 경영에 복귀하였고, 반도체 산업에 손을 대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대표이력
- 1936 협동정미소 설립
- 1938 삼성상회 설립
- 1961.8~1962.9 제1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 1965 중앙일보 사장
- 1969 삼성전자 설립
- 1974 삼성석유화학 설립
- 1977~1987.11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 1982~1987.11 한일경제협회 고문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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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료공업 | 이병철 | A는 B에 의해 설립되었다 | A ekc:founder B |
한국비료공업 | 롯데정밀화학 | A는 B의 전신이다 | A ekc:isOldNameOf B |
이병철 | 사카린 밀수사건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이병철 대표사진[2]
영상
- 대한뉴스 제 605호-전진의 맥박(게시일: 2016년 11월 14일)
주석
- ↑ "이병철",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윤희종, 조은효, "이병철 탄생 100년.. 삼성의 ‘일류 DNA’ 원천을 찾는다", 『파이낸셜뉴스』, 2010년 1월 13일
- ↑ 김재현, "한국비료(韓肥) 사카린 밀수사건",
『네이버 블로그 - 따뜻한 고향』online , 작성일: 2016년 0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