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홍송(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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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그룹의 창업주 고 서홍송 명예회장은 1953년 경북 청송에서 1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서씨. 서 명예회장은 어렵게 얻은 아들이다. 젊은 시절 외향선을 탄 부친 고 서용달씨는 7대조까지 모시는 종손이었지만 아들이 없었다. 모친 고 김수강씨는 아들 하나만 점지해 달라며 마을 큰바위 앞에 나가 삼신할미에게 정성을 쏟았다. ‘호사다마’였는지 아들을 얻었지만 가세는 기울었고 부친도 곧 세상을 떠났다. 어릴 적 서 명예회장은 ‘말수가 적었던 아이’였다. 말이 없고 내성적인 아이는 또래 아이들에게 맞고 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모친은 아들을 태권도장에 보냈다. 태권도는 그를 자신 있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시켰다. 20대에는 도민체전 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고, 한때 사무실 위에 도장을 차릴 정도로 태권도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그는 당시 방위사업체이던 풍산금속 공정 담당기사로 첫 취직을 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풍산은 좋은 회사였다. 월급이 생기자 그는 평소 하고 싶던 일을 해 나갔다. 주말마다 경주 나이트클럽을 찾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동쪽 해안을 달렸다. 하지만 소모적인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럴 만큼 넉넉한 가정도 아니었고 외동아들이라 결혼도 서둘러야 했다. 부인 박춘희씨를 만난 것도 이때쯤이다. 가정을 갖고 책임감이 생기면서 그는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손수레 장사를 하더라도 내 일을 하고 싶어” 퇴근 후 아내에게 던진 한마디가 사업가로서의 그를 만든 시발점이다. 사표를 던지기 전 그는 자신의 집 인근에 집 한 채를 지었다.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27세 되던 1979년 그는 사표를 내고 대명주택을 차렸다. 회사를 꾸렸지만 돈은 부족했다.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여름철 포항 칠포해수욕장에서 피서용품을 파는 일이었다. 작은 회사는 불과 6년 만인 1985년 포항을 대표하는 주택건설 회사로 성장한다. 훗날 서 명예회장은 남다른 고객 서비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정한 서비스 원칙은 3가지다. ▲소비자 불만 전화가 오면 이유를 불문하고 달려가라 ▲당일 해결이 안 되면 다음날 반드시 처리해라 ▲작은 고장도 무조건 수리한다였다.

서 명예회장은 1986년 12월 동원토건을 인수하면서 대명주택 본사를 서울로 이전했다. 지역에 머물러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론이다. 주변에선 말리는 이가 많았다. 인맥도 학연·지연도 없는 서울에서의 사업은 무모한 도전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회사명을 대명주택에서 대명건설로 바꾸고 제2의 도전에 나섰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서울이었지만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1987년 강서운전면허시험장을 착공하는 등 외주사업이 늘면서 현장 경험이 풍부한 경력사원들이 속속 합류했다. 다른 회사만큼 일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임직원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렸다. 매출은 매년 비약적으로 늘었다. 대명건설은 해마다 100% 이상 성장을 거듭했다. 당시 한국의 건설사는 5000여개. 동원토건 인수 후 첫해 건설사 도급 순위는 338위었으나 1995년에는 133위로 급성장했다.

건설 분야가 성장 궤도에 올라서자 서 명예회장은 ‘레저산업’이라는 또 하나의 도전을 결심한다. 서 명예회장은 입버릇처럼 “한국에서 최고 가는 레저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되뇌었다.1980년대부터 중산층이 형성됐고 ‘마이카’ 시대가 도래했지만 여전히 대다수에게 레저란 단어는 생소할 때다. 1989년 9월 설악콘도 기공식을 열었지만 목표는 단순한 콘도건설이 아니었다. 잠시 머물고 가는 숙박시설이 아닌 쉬면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종합 레저타운을 구상했다. 지금의 대명 비발디파크(구 홍천 레저타운)가 탄생한 배경이다. 대명레저산업은 1990년에 설립된 설악리조트에 이어 양평콘도(1992년), 비발디파크(1994년), 홍천과 설악 골프장(1997년)을 오픈하는 등 공격적인 확장을 이어간다. 덕분에 1990년대 중반 대명은 자타가 공인하는 종합 리조트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대명에도 커다란 시련이 닥쳤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회사 부채는 약 2000억원에 이르렀다. 회사 규모나 연매출 등을 고려하면 부채 규모가 큰 편이 아니라고 판단한 게 화근이었다. 당시 급속하게 얼어붙은 경기가 발목을 잡았다. 은행마저 부도를 걱정하던 때인 만큼 빠른 성장만을 보이던 레저 분야의 매출은 급락했다. 굴지의 기업마다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대명 역시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결국 1998년 6월 대명건설과 대명레저산업이 부도를 맞았다. 다행히도 대명은 최단시간(6개월)인 같은 해 12월 화의인가를 받았다. 급여가 깎이는 상황에서도 참고 인내해 준 직원들의 노력과 헌신이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어렵게 얻어낸 화의인가에도 대명은 어려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2011년 가을 미국에서 터진 9·11테러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던 전 세계 경제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해 11월 22일. 당시 서 명예회장은 단양콘도 분양에 사활을 걸고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업무를 마친 후 퇴근하던 서 명예회장이 쓰러졌다. 소식을 접한 직원들은 과로 누적 정도일 것으로 여겼지만 그는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후 거짓말같이 살아난 부동산 경기로 인해 마지막까지 걱정하던 콘도 분양은 성공적으로 마감됐다. 결국 2003년 8월 대명레저산업은 조기에 화의를 졸업하게 됐지만 서 명예회장은 그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부인은 박춘희

자녀는 서경선, 서준혁, 서지영

가족

  • 본인: 서홍송(대명그룹 창업자)
  • 부인: 박춘희(대명그룹 명예회장)


고려시대 권문세족은 이천 서씨,인주 이씨,해주 최씨,남양 홍씨가 4대 문벌귀족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천서씨에서 분파한 대구 서씨(大丘徐氏) 서성(徐渻 증 영의정) 후손이 3대 정승(서종태(徐宗泰 영의정),서명균(徐命均 좌의정),서지수(徐志修 영의정)),3대 대제학(서유신(徐有臣 대제학),서영보(徐榮輔 대제학),서기순(徐箕淳 대제학))을 최초로 6대 연속과 서명응(徐命膺 대제학),서호수(徐浩修 직제학), 서유구 (徐有榘 대제학) 3대 대학자를 연속 배출하여 조선에서는 서지약봉(徐之藥峰)이요.홍지모당(洪之慕堂) 으로 유명했고, 연리광김(延李光金)와 더불어 대구 서씨,풍산 홍씨,연안 이씨,광산 김씨가 조선 최고 4대 양반 가문으로 꼽힌다. 숙종때 이런 일화가 전한다.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비롯한 서씨 성을 가진 참판급 이상 중신이 30여명 이었다. 어느날 조회를 소집한 숙종이 용상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니, 오가는 대신들이 대부분 서씨들이라, “마치 어미 쥐가 새끼쥐를 거느리고 다니는 듯 하다!” 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숙종의 말씀이었으나,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어미쥐로 빗대 그 아래 웅성거리는 서씨대신들의 융성함을 나타내는 기막힌 표현이였다.대구 서씨달성 서씨라고도 부른다.


이천서씨서신일(徐神逸)(아간대부 정2품)- 서필(徐弼)(내의령 종1품) 서봉(徐逢)(광평시랑평장사 정2품) - 서희(徐熙)(내사령 종1품) - 서눌(徐訥)(문하시중 종1품) 서유걸(徐維傑)(좌복야 정2품) 서유위(徐維偉)(장야서령 정3품) 서주행(徐周行)(달성군) - 서정(徐靖)(판삼사사 종1품) 서존(徐存)(병부상서 정3품)-서균(徐鈞)(우복야 정2품) 서린(徐嶙)(판대부사 정2품) 서석(徐碩)(시랑평장사 정2품)-서원(徐元)(평장사 정2품) 서공(徐恭)(판삼사사 종1품) 서순(徐淳(徐諄)(동지추밀원사 종2품) 서성(徐成)(평장사 정2품) 서염(徐廉)(사복부령 종2품)에 걸쳐 칠대(7 대) 동안 연속 재상직에 임명된 고려 최고 문벌 귀족 가문이다.


무신란 이후에도 이부판사 서신(徐愼 종1품),봉성군 서약진(徐若珍),좌복야 서효리 (徐孝理 정2품),밀직사사 서무질(徐無疾 종2품),중추원사 서숭조(徐崇祖 종2품),판도판서 서진(徐晉 정3품),승지 서욱(徐勖), 부령 서익(徐翼),문하찬성사 서기준(徐奇俊 종2품),정당문학 서희팔(徐希八 정2품),판내시부사 서춘(徐椿 종2품), 문하시중 서릉(徐稜 종1품),대광내의령 서린(徐鱗 종1품), 판도판서 서적(徐迪), 문하시중 서원경(徐元敬 종1품),문하찬성사 서영(徐穎 종2품),동지밀직사사 서신계(徐臣桂 종2품),승지 서녕(徐寧), 판밀직사 서념(徐恬 종2품),판내부사사 서진(徐璡 종2품) 평장사 서충(徐忠 정2품) 평장사 서윤(徐玧 정2품), 판사재사 서효손(徐孝孫 종2품),진현관대제학 서성윤(徐成允 정2품),밀직사 서원(徐遠 종2품), 추밀원사 서후상(徐後祥 종2품), 평장사 서희찬(徐希贊 정2품),밀직사 서영계(徐永桂 종2품), 밀직사 서천량(徐天亮 종2품), 봉익대부 서윤현(徐允顯 종2품),정당문학 서균형(徐鈞衡 종2품),평장사 서인한(徐仁漢 정2품) ,문하시중 서신(徐信 종1품),병부령 서수(徐秀 정2품) ,예빈사 소윤 서첨(徐詹),병부낭중 서저(徐氐), 판도좌랑 서평(徐坪), 예빈소경 서광(徐珖), 감찰어사 서의(徐義),계성군 서원기(徐原奇) 주부 서면(徐冕), 소감 서정(徐程),사인 서단(徐亶),병부시랑 서장기(徐長己),주부 서경의(徐聲宜),소감 서화흡(徐化洽),축하사절 서조(徐助),예빈시윤 서추(徐諏), 어사중승 서염(徐琰), 집의 서연(徐延),내의시랑 서희적(徐希積),병부상서 서희량(徐希亮 정3품),승지 서령(徐領),생원 서영보(徐永甫),중정대부 서선(徐瑄), 만호 서혼(徐琿),소감 서황(徐晃),통직랑 서중린(徐仲麟),별가 서윤공(徐允公),호조전서 서의(徐議 정3품), 병부시랑 서의(徐誼), 병부시랑 서간(徐諫),소감 서시의(徐時義),판전객시사 서익진(徐益進),감무 서천부(徐天富),태관서령 서공기(徐公騏),전공총랑 서능준(徐能(陵)俊),판내부시사 서정수(徐貞壽),요동진무사 서현(徐顯),사마 서관(徐寬) ,판도찬중 서원절(徐元節),비인현사 서유(徐愈), 성균관진사 서문찬(徐文贊) 주부동정 서무(徐茂),봉례공 서박(徐樸),연산공 서직(徐稷), 전서 서의(徐義 정3품),봉정대부 서호덕(徐好德) 등 15대 대대로 많은 재상을 배출하였다.

상장군 서보(徐甫 상서우복야.정2품),서유(徐裕),서균한(徐均漢),서민경(徐敏敬),서찬(徐贊),서돈경(徐敦敬),서정희(徐廷希),서홍찬(徐洪贊),서인조(徐仁朝),상호군 서응려(徐應呂),대장군 서후(徐厚),서희(徐曦),서준(徐俊),대호군 서찬(徐贊),장군 서지(徐趾),서칭(徐贊),서정(徐挺),서광순(徐光純),서금광(徐金光) ,중낭장 서긍(徐肯),서찬(徐贊),서정(徐靖),서오(徐敖),시중랑 서문한(徐文漢),호장 서필중(徐必中),서전금(徐田金),서순인(徐純仁),서복(徐福),서자번(徐自蕃) 등이 이름을 드높였다.

대학자로 서시랑도 서석(徐碩 정2품),박사 서선(徐禪),삼국사기 서안정(徐安貞),국성전교수 서인(徐諲),고려화가 서구방(徐九方),고려음악가 승지 서온(徐溫),고려국사 원묘국사 요세(了世),고려대사 서영관, 고려 효자 서식(徐湜),고려 혁명가 서언(徐彦),낭장 서준명(徐俊明),교위 서유정(徐惟挺),서규(徐規)가 화려한 명맥을 유지했다.

고려 황제국 충신으로 사재승 서숭(徐崧),서대창(徐大昌),서필중(徐必重),진봉사 서방(徐昉),위위경지 태사국사 서웅(徐雄),합문통사사인 서연(徐延),예빈시윤 서찬(徐瓚),사복부령 서염(徐廉),정치도감 좌랑 서호(徐浩),항적 서효관(徐孝寬),내수 서양수(徐良守), 기거사인 서언 (徐彦),생원 서복례(徐復禮),공조전서 서보(徐輔), 직제학 서중보(徐仲輔), 중생원 서희준(徐希俊), 사재감정 서광준(徐光俊),통훈대부 서운(徐暈), 장령 서견(徐甄)은 조선이 건국된 뒤에도 충절을 지켜 끝내 벼슬에 오르지 않아 시흥의 충현서원(忠賢書院)에 제향됐다.

대구달성서씨(大丘達城徐氏)(달성 서씨 대구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연성군)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서씨일가연합회 [[1]] [[2]]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에서 거행된다.

효양산 전설문화축제(孝養山 傳說文化祝祭)

장위공 서희(徐熙) 선생을 되새겨 볼 수 있고, 서신일(徐神逸)선생의 은혜 갚은 사슴과 황금송아지 전설이 있는 효양산의 주요 6개소(물명당, 효양정, 금송아지상, 은선사, 서씨(徐氏)시조 서신일(徐神逸)묘, 금광굴)를 탐방하며, 효양산의 청취를 만끽할 수 있다. 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로 명칭 변경

이섭대천(利涉大川)

창전동 이천시민회관 구내에 세워져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후백제와 마지막 일전을 치르기 위해 출정길에 올랐다가 장마로 물이 불어난 복하천(福河川)을 건너지 못해 곤경에 빠졌을 때 '서목(徐穆)'이라는 이천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복하천을 건너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그 후 왕건이 서목(徐穆)의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이섭대천'이라는 고사에서 따다가 이 지역에 ‘이천(利川)’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이천의 유래에 관한 이 일화를 기념하기 위해 1989년 11월 이천 지역 토박이 원로들의 모임인 이원회(利元會)가 중심이 되어 이천시민회관 구내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2단으로 된 방형의 대좌 위에 길고 커다란 자연석 형태의 흑요암을 올려놓았으며 흑요암 중앙에 '利涉大川(이섭대천)'이라는 글씨를 커다랗게 새겨 넣었다.

이섭대천종합예술제(利涉大川綜合藝術祭)

새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듯이 “빛으로” 찬란하게 예술인들은 자신만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또는 자신만의 색채로 우리 이천의 예술을 꽃피우고자 합니다. 우리 이천을 문화예술의 도시로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문화와 예술이듯이 이천의 혼불로 르네상스를 이천예총 각협회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천예총은 8개협회(국악협회/무용협회/문인협회/미술협회/사진작가협회/음악협회/연극협회/연예예술인협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천예총이 창의적 생각과 열린마음으로 예술인들의 끼와 혼을 발산시키고 시민들에게 감동과 희열을 느끼게 하는 자리가 바로 이섭대천종합예술제입니다.

서씨 시조 서신일 추향대제(徐氏 始祖 徐神逸 秋享大祭)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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