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오종도비(吳宗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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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19일 (일) 22:2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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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오종도비(吳宗道碑239)) 甲串津西石立崇갑곶진 서쪽에 한 비석이 우뚝하니, 壬辰天將紀吳公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오종도공을 기념했네. 峩峩浩浩山河氣높고 넓은 강산 같은 당시의 기백, 永世同傳撫綏功위무해준 공로를 영원토록 전하리니. ○ 선조 임진년(1592) 난리에 중국 절강(浙江)의 소흥부(紹興府) 사람 오종도(吳宗道)가 흠차관(欽差官)으로서 황명을 받들어 동쪽으로 왔다. 정유년(1597) 왜가 다시 침략하였을 때에 형개(邢玠)의 군 문에 소속되어 수병을 이끌고 강화에 머물면서 주민을 보살피니 섬의 모든 사람들이 신뢰하고 편안하게 여겼다. 그가 돌아갈 때에 강 화도 사람들이 그를 생각해서 갑곶나루 위에 비석을 세워 떠나는 사람의 은혜를 표현하였다. 그 말은 다음과 같다. “아아, 천군(天軍)의 강성함은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으며,(於鑠王師 聿遵海澨) 오공(吳公)의 밝고 정성스러움은 실로 그 군사를 장악하였도다.(顯允吳公 實 掌其旅) 인의(仁義)가 가득 차고 울창하여 큰 소리로 노래 부르니, 239) 본래 갑곶나루 진해루 안쪽 언덕 위에 있었으나, 2000년에 강화역사관 비석군으로 이전되었다.

(仁涵義鬯 護譊歌謳) 푸르고 서늘한 바람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 음과 같음이라.(譬彼靑颸 是吹是煦) 우리를 불구덩이에서 건져내어 목전(目前)에 두었으며,(拯我燎灊 措之袵席) 덮은 장막을 걷고 폭풍 을 부려서 미치지 못하게 하였도다.(帲幪乍輟 飊馭莫及) 높은 귀부 (龜趺)는 대로(大路)에 드러나 보이고,(嵽嵲龜趺 表玆達路) 마니산은 높고 늠름하며 강물은 장대하다.(尼山峨峨 河水浩浩) 아아, 공의 아 름다움을 만세에 걸쳐 사모하리라.(繄公之烈 萬世之慕)”